"고문 또 고문"… 수 십년 지나도 기억 생생했다

"고문 또 고문"… 수 십년 지나도 기억 생생했다
15일 제주4·3 일반재판 32명 특별재심 심문기일
생존자·유족 5명 증언대 나와 처참한 기억 '재생'
  • 입력 : 2021. 12.15(수) 18:35
  • 송은범기자 seb1119@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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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4·3 당시 경찰에 의해 자행됐던 불법 체포와 고문, 구금에 대한 증언이 법정에서 나왔다.

 제주지방법원 제2형사부(재판장 장찬수 부장판사)는 1947년 4월부터 1950년 4월 사이 일반재판으로 유죄 판결을 받은 32명의 특별재심 개시 여부를 결정하기 위한 두 번째 심문기일을 15일 진행했다.

 이날 심문기일에서는 재심 대상자 중 유일한 생존자인 고태명(89)씨를 비롯해 5명이 당시 불법 고문과 구금에 대한 증언에 나섰다. 고씨를 제외한 나머지 4명은 재심 대상자의 유족이다.

 가장 먼저 증언에 나선 고씨였다. 그는 김녕중학교 1학년에 재학 중인 1948년 6월 영문도 모른 채 경찰에 끌려가 몽둥이 구타와 전기고문을 받은 뒤 미군정의 포고 2호·법령 제19호 위반 혐의로 징역형의 집행유예 선고를 받았다.

 고씨는 "처음엔 각목으로 마구 때리는 것으로 시작해 나중에는 줄을 몸에 감아 전기를 흘려 보내는 고문까지 당했다"며 "일주일 동안 고문을 당한 뒤 경찰이 강요한대로 혐의를 인정하니 고문이 멈췄다"고 설명했다.

 또 고씨는 "이후 살기 위해 경찰 시험에 응시, 합격까지 했지만, '폭도 가족이 경찰이 될 수 있나'라는 투서 때문에 합격이 취소되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이어 4·3 당시 희생된 오성창씨의 아들 오종구(75)씨가 증언에 나섰다. 오씨의 아버지는 1947년 봄 서귀포시 성산읍 고성리에서 경찰에 연행된 뒤 미군정의 포고 2호 위반 혐의로 징역 3년을 선고 받았다. 경찰의 해산 명령을 따르지 않았다는 이유로 잡혀간 것인데, 고문을 받은 오씨의 아버지는 이후 목포형무소에 수감된 뒤 사망했다.

오씨는 "어머니 역시 경찰에 끌려가 물고문을 당했는데, 초주검 상태로 수레를 타고 집에 돌아왔다"며 "아버지의 부재와 장애가 생긴 어머니로 인해 나는 14살 때부터 남의 집 머슴살이로 생활을 이어갔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모든 증언을 들은 장 부장판사는 다음달 5일 세 번째 심문기일을 개최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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