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觀] 당신의 얼굴
  • 입력 : 2021. 12.24(금) 00:00
  • 이정오 기자 qwer6281@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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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빛과 철'의 배우 김시은.

누군가의 얼굴을 가장 자세히 들여다 볼 수 있는 창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극장의 스크린일 것이다. 거대한 창의 밖에서, 관객의 안으로 천천히 또는 갑자기 들어오는 낯선 손님, 우리는 스크린을 통해 다가오는 배우의 얼굴을 보면서 대자연의 그것 만큼이나 놀라운 순간들을 목도하곤 한다. 흔들리는 잎새를 닮은 감정의 떨림, 출렁이는 파도를 담은 주름의 파동, 조용한 비처럼 흐르는 눈물과 환절기처럼 미세하게 변하는 표정들. 모바일과 모니터를 통해서는 도무지 완전하게 조우했다고 말하기 어려울 그 순간들을 선사한 올해의 배우, 그들의 얼굴을 다시 떠올려본다. 다행스럽게도 스크린을 통해 조우했기에 쉽게 잊혀지지 않고 각인된 그들의 얼굴 덕에 올해도 행복했다. 조금은 낯설 수도 있을 배우들의 이름을 호명하며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혼자 사는 사람들'의 공승연의 얼굴은 텅 빈 냉장고 같았다. 푸르스름한 형광등 아래서 하루를 먹고 사는 일을 그저 수행하는 진아는 콜센터의 격무에 시달리지만 감정을 토해내는 일을 원하지 않는 사람이다. 울분도 분노도 그저 한 끼의 식사처럼 먹어 삼키는 고독한 생활인인 진아는 배우 공승연의 섬세한 조율로 완성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공승연은 진아라는 인물을 단순히 차갑고 정이 없는 사람으로만 그려내지 않는다. 이 캐릭터의 욱신거리는 마음과 꿈틀대는 진동을 예민하고 차분하게 담아 그려낸 그의 연기는 투명하고 선명하게 마음에 남았다. 반면 '빛과 철'의 김시은의 얼굴은 뭍으로 나온 물고기처럼 펄떡이는 강렬한 움직임으로 마음에 새겨졌다. 교통사고로 남편을 잃고 고통스러운 기억 속에서 살던 중 또 다른 고통과 맞닥뜨리게 되는 희주는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움직이는 인물이다. 서걱거리는 걸음의 끝에는 쨍그랑하는 파열음이 늘 존재하고 격한 떨림의 끝에는 얼어 붙을 정도로 차가운 눈물이 툭툭 소리를 내며 떨어져 깨진다. 배우 김시은은 베일 것 처럼 위험하고 데일 것 처럼 격렬한 희주를 온전히 끌어 안고 관객 앞으로 성큼 걸어왔다.

 '휴가'의 김아석과 '낫아웃'의 정재광은 툭 던져진 공처럼 관객 앞으로 다가온 배우들이다. 부조리에 맞서기엔 지금의 삶이 버거운 '휴가'의 준영을 그려낸 김아석은 이 시대 청년의 몸과 마음을 정직하게 보여줬다. 웃자란 동시에 더 자라기를 멈춘 준영의 오늘과 내일은 김아석의 단단함 위에 굳어져 안타까움을 더했고 재복을 만난 이후 조금씩 금이 가는 변화의 지점들은 김아석의 차분한 양생 덕에 설득력을 더했다. '낫아웃'의 정재광은 절절 끓는 보일러의 에너지로 관객들을 놀라게 만든 배우다. 야구 선수의 꿈을 결코 포기하고 싶지 않은 청춘 광호의 욕망과 좌절, 후회와 욕심, 비명과 울음을 스스로의 용광로에 넣고 패기라는 무기와 가능성이라는 보석을 건져 올린 '낫아웃'의 정재광은 단연 올해의 배우라 할만큼의 놀라운 연기를 보여줬다.

  '어른들은 몰라요'의 배우 안희연과 이유미는 올해의 '마주 보기'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닐 것이다. 열 여덟, 어른들이 모르는 척 하는 세계에 던져진 두 사람이 서로를 향해 다가서고 멀어질 때, 돌아서거나 달려올 때 두 배우의 눈과 몸은 마치 캐치볼처럼, 부메랑처럼 서로를 향하고 있었다. 저주와도 같은 시절의 불꽃놀이를 앞에서도 옆에서도 뒤에서도 함께 보던 이 배우들의 눈빛 교환 덕에 영화 속 이들의 위험천만한 여정을 보면서도 여러차례 안도하며 감탄할 수 있었다.

쓰는 내내 수많은 배우들의 얼굴과 이름이 연이어 떠오른다. 차마 여기 다 쓰지 못한 배우들의 순간을 천천히 기억하고 다시 마주하는 것으로 올해를 마무리해도 부족할 것이 없겠다는 마음이다. 몸과 마음을 다해 활자 속의 인물과 독대한 뒤 영화라는 바다에서 헤엄치게 하고 그 움직임의 활력으로 보는 이를 놀라게, 반하게, 기쁘게 만들어준 많은 배우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한다. <진명현 독립영화 스튜디오 무브먼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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