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학주의 제주살이] (21)어머니의 기도

[황학주의 제주살이] (21)어머니의 기도
  • 입력 : 2022. 02.08(화) 00:00
  • 최다훈 기자 orca@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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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마당에 홍매와 황매가 피었다. 그러나 올겨울이 유독 춥게 느껴지는 나의 눈에 그 꽃들의 발화 상태는 그리 좋아 보이지 않는다. 어머니는 꽃을 참 좋아하셨다. 꽃을 싫어하는 사람도 있나, 라고 말할 수 있지만 꽃이 아니라도 보는 순간 제 가슴을 그득 채우는 특별한 무언가가 사람들에게는 있기 마련이고 누구에게는 그게 꽃이 아닐 수 있다. 어머니는 평생 생일이나 명절 선물로 꽃 외에는 원하시는 게 없을 정도였다.

어머니의 3주기 모임은 경기도 양평에 있는 수목장에서 우리 가족과 동생네 가족이 모여 조촐히 진행되었다. 우리 부부는 새벽 비행기를 타고 제주에서 김포공항에 내린 다음 공항철도를 이용해 서울역까지 갔다. 그리고 서울역에서 다시 KTX로 양평까지 갔고, 미리 가 있던 동생이 양평역에 마중 나와 서종면 도장리 자연장지까지 차로 이동했다. 서종면은 스승이신 최하림 선생님이 사셨던 곳이라 너무 잘 알고 있는 지역이다. 우연이지만 스승과 어머니는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묻혀 계시고, 나는 내 인생을 기댔던 두 분의 삶을 오래 지켜볼 수 있었으며, 두 분의 묘지를 찾아가는 발걸음을 같은 날 맞출 수 있는 행운까지 얻게 되었다. 그런 날 특별한 가슴의 울림이 없을 수 없다. 감사함에는 늘 미안함과 아쉬움이 뒤따르는 법. 꼭 그 때문은 아니지만, 그래서 하는 말은 아니지만, 마음의 빈 곳은 메워질 수 있는 것이 있고 다시는 메워지지 않는 것이 있다.

남편에 대한 쓰라린 기억과 자식 걱정이라는 짐이 늘 어두운 그림자로 붙어 있는 어머니의 굽은 등은 다시는 펴지지 않았다. 어머니는 내게 말씀하셨다. "너 때문에 내가 다른 기도를 못 한다." 오십, 육십이 되어서도 떠돌며 사는 나 때문에 눈을 감을 수 없다 하셨고, 나를 위해 기도하느라 다른 중요한 기도들을 못 한다 하셨다. 어머니의 그 말씀을 살아생전에 다시 하지 않도록 해드리지도 못했고, 지금 다시 들을 수조차 없게 되었다. 그 기도는 어머니라는 이름으로 걸어야 하는 한 여인이 안고 있는 인간의 조건이 얼마나 괴롭고 먼 길인가를 가르쳐준다.

나는 꽃다발 대신 어머니가 좋아하시던 노래, 문주란의 '돌지 않는 풍차'와 '타인들'을 묘지에서 틀어드렸다. 꽃들이 오히려 어머니 자신의 불행을 더욱 부각시키지는 않을까 싶어. 그러면 무엇이 나아지느냐 하면, 잘은 모르겠지만 어머니에게는 더 좋을 것도 나쁠 것도 없을 것이다. 이런 식으로 어떻게든 위로가 될까 하고 서툴게 노력했던 자식들은 어머니의 마음에 얼마나 들었을까. 그것만으로도 좋으셨을 거야, 이런 말은 하지 않아야 한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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