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觀] 당신은 모르실거야

[영화觀] 당신은 모르실거야
  • 입력 : 2022. 02.18(금) 00:00
  • 이정오 기자 qwer6281@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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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모럴 센스'.

사람 사이를 가깝게 만드는 것 중 하나는 성향이다. 정치적 성향, 종교적 성향을 비롯 최근 혈액형을 뛰어넘어 자기소개의 첫 번째에 등장하는 MBTI테스트의 유행을 보고 있자면 '우리는 얼마나 닮은 사람인가'가 시대의 화두가 아닐까 생각이 들 정도다. 물론 성향이 다른 이들과 가까워지는 일도 가능하다. 나와 닮지 않은 사람에 대한 호기심 이야말로 상대에 대한 지속적 탐구를 가능하게 만드는 일이고 도저히 알 수 없는 그 마음의 근처에 도달하는 일은 관계에서의 긴장감을 증폭시키기도 한다. 하지만 호기심이 끝나는 순간이 있기 마련이고 그 호기심의 끝에서부터는 여전히 나와 너무 다른 이들과 관계를 이어가는 일은 결코 쉽지 않은 불편함의 연속이 되고야 만다. 사사건건 대립하는 항목들 마다 타협하거나 설득하는 일은 갈수록 서로를 지치게 만들고 애초에 다를 수밖에 없는 각자의 고유한 가치들을 수정해 나가는 것은 끝이 보이지 않는 고된 일이다. 그래서일까 우리는 애를 써서 나와 닮은 이들을 발견해 나가고자 한다. 사소한 단서 하나, 무심결에 내비친 태도 하나로도 단박에 알아차릴 수 있는 우리가 통한 것, 우리를 통과하는 것. 우리는 바로 그 내 눈에 반짝이는 우리만의 보물을 찾아 헤매는 트레져 헌터로서의 매일을 포기하지 않는다.

 넷플릭스 코리아 오리지널 영화 '모럴센스'는 '도덕 관념'이라는 제목의 독특한 로맨틱 코미디다. 이 영화가 독특한 이유는 성적 성향을 전면에 내세운 영화의 소재 때문이다. 무려 BDSM(인간의 성적 기호 중 가학적 성향을 통틀어서 말하는 것)을 중심적으로 다루고 있는 이 작품은 음지에서 쉬쉬하던 이야기일 수 있을 소재로 작정하고 양지로 끌어올리는 용기 있는 선택을 했고 소재의 무게에 짓눌리지 않는 결과물로 완성해냈다. 한 직장, 같은 부서에서 근무하게 된 이름마저 닮은 두 사람 정지우 사원과 정지후 대리. 매사에 똑 부러지는 멋진 여자 지우와 잘 생기고 성격도 좋아 인기 만점인 지후는 이름만 비슷할 뿐 다른 점이 많은 사람들이다. 특히 서로의 앞에서는 그 다름이 더욱 배가 된다. 어느 날 지후의 앞으로 온 택배를 자신의 것으로 착각해 열어 보게 된 지우. 그리고 택배라는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는 순간 이후 두 사람의 관계는 급물살을 타게 된다. 상자 안에 담겨 있던 지후의 도구로 인해 사내 선후배 관계가 아닌 사적인 파트너가 되는 두 사람, 과연 연애도, 로맨스도 빠진 대신 무수히 많은 도구들이 추가되는 이들의 관계는 어떤 식으로 발전하게 될까.

 '모럴센스'는 남과는 다른 성적 성향으로 관계에 실패했던 남자와 성적 취향에 대한 진지한 호기심과 태도를 지닌 여자가 서로의 다름과 닮음을 발견해가는 이야기다. 어떤 관객들에게는 아쉬울 수도 있겠지만 '모럴센스'는 선정적이지 않다. 어쩌면 성인을 위한 성교육물일 수도 있을 정도로 차분하게 용어와 감정들을 설명하고 묘사하는 이 영화는 소재에 대한 어떤 기대치들을 그리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듯하다. 만약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시리즈를 기대했다면 실망할 가능성이 높다. 이 작품은 소재의 유혹에 흔들리지 않는 전혀 다른 길을 걷는다. 섹슈얼한 긴장감보다는 두 사람 사이의 조심스러운 상호 작용에 훨씬 더 민감한 이 작품은 결코 수위가 낮다고는 할 수 없지만 흔히 말하는 뜨겁게 끓어올라 데일 것 같이 만드는 '마라맛 로맨스'가 아니다. 마치 속이 다 들여다 보이는 지리처럼 칼칼하고 개운한 맛을 내는 작품인 '모럴센스'는 소재를 명확하게, 표현을 정확하게 하는데 공을 들인다. 감독과 배우들은 모두 이 선택과 집중에 합의한 것으로 보인다.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이다'라는 메시지를 전하고자 했던 영화는 다양한 각도로 이 가치를 설득하는데 집중하는데 조심스럽지만 단호한 박현진 감독의 연출과 진지하고 열정적인 태도로 캐릭터를 이해하고 표현해낸 배우 서현과 이준영 덕에 소재 주의에 대한 우려는 빠르게 불식된다. 그렇다고 이 영화가 딱딱하거나 단조로운 것은 아니다. 감각적인 화면 구성과 매끄러운 편집, 무엇보다 공들여 쓴 대사들이 돋보이는 충분히 즐길 요소가 많은 작품이기도 하다.

 이토록 다르고 많은 사람들 속에서 온전한 나로 사랑할 수 있는 일도, 사랑받을 수 있는 일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어쩌면 평생 불가능한 숙제일 수도 있다. 하지만 타인을 사랑하는 일 이전에 나를 사랑하는 일이 선행돼야 한다는 간단해 보이지만 어려운 이야기를 '모럴센스'는 포기하지 않는다. 최근 '장르만 로맨스', '연애 빠진 로맨스'에 이어 '모럴센스'까지 여성 감독이 만든 로맨틱 코미디들이 이 장르의 한 뼘을 더 넓히고 있다. 세 작품 모두 기존의 한국 로맨스·멜로 장르의 작품들과는 또 다른 이야기를 건네며 동시대적 고민을 관객들과 함께한 영화들이다. 한동안 침체기를 걷던 로맨스·멜로 장르에 생기가 돌고 있다는 점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 아닐까 한다.

<진명현 독립영화스튜디오 무브먼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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