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정부의 도래를 앞둔 지금 젠더문제는 그 어느 사안보다도 뜨거운 이슈가 됐다. 젠더 문제란 남성과 여성이 사회에서 어떠한 조건 속에서 어떠한 방식으로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고 있는지, 그로 인한 부정의의 문제는 어떻게 교정해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의식을 드러내는 개념이다. 이를 위해 그동안 여성가족부가 존재해온 것이다.
한 세대를 거치는 동안 여성들의 교육과 사회진출을 가로막는 많은 법과 제도가 철폐됐고, 그로 인한 혜택을 우리 자녀세대는 당연하게 누리고 있다. 남녀에 따라 차별적이었던 정년 연령을 똑같게 한 것, 혼인과 동시에 사직서를 내야하는 관행을 없앤 것, 금녀의 지대였던 육·해·공사에 여성이 진입할 수 있게 된 것, 가정과 기술과목을 남녀 모두 배울 수 있게 된 것, 여성에게만 주어졌던 출산휴가가 남성에게도 당연한 권리로 인정된 것 등 남녀 차별적 제도가 없어지고 편견을 벗어버리기 시작한 것은 오랜 시간에 걸쳐 이뤄진 것이다. 그러한 부당한 법과 제도의 문제에 대해 목소리를 높인 여성들이 결집한 결과이며, 그러한 외침을 함께 한 남성들의 연대가 있었고, 나아가 그것을 정책으로 실현시킨 부처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러나 이러한 기회의 평등은 일상의 삶속에 여전히 남아있는 차별적 관행과 비가시적인 가부장적 문화를 없애는 완전한 열쇠가 되진 못하다. 임·출산과 양육의 어려움으로 주체적인 삶을 포기하는 수많은 여성들, 가족에 대한 돌봄과 헌신으로 경제적 능력을 갖추지 못해 빈곤한 노년기를 살아가는 여성들, 품행방정의 신화가 여전한 사회 속에서 숨죽이며 사는 폭력피해 여성들에게 기회의 평등이라는 형식은 이들에게 제대로 된 답을 주지 못한다. 이들에게 법과 제도가 갖춰졌으니, 이 모든 일은 당신이 잘못 살아서 벌어진 결과이니 사회는 더 이상 책임이 없다고 말할 수 있는가? 약간의 시혜적 지원을 하면서 공동체의 책임을 퉁치고 있지는 않는가?
남성과 여성이 살아가는 조건의 다름, 그로 인해 야기되는 삶의 결과의 차이들, 이것을 알아채고 제도를 보완해 삶의 존엄을 지켜주는 것을 우리는 성 인지적 정책이라고 부른다. 이는 남녀 모두에게 해당하는 동일한 틀거리라는 점에서 공정한 잣대이다. 남성다워야 한다는 언설, 경제적 능력이 없으면 루저라는 통념, 가족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남성들의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만 보는 것은 일견 성중립적으로 보이나 사실은 성맹적인 태도이다. 성인지적 감수성을 가지고 들여다 볼 때 그 뒤에 있는 우리사회 가부장적 문화가 비로소 드러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개인적인 것은 정치적인 것임을 다시 소환해야 할 때이다. 개인적 문제 뒤에는 구성원들이 함께 해결해야 할 사회구조와 문화가 있으며, 그것을 변화시킨 결과 역사가 발전돼왔다. 이것은 우리 모두의 정치적 책임이며 앞으로도 계속돼야 한다. <민무숙 제주여성가족연구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