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나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지만 붙들면 지속된다.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다면 시간을 더 가지면 된다. 이 때 말을 하지 않고 화를 바라보기만 해도 사라진다. 얼마 전 아내에게 화가 났다. 저녁에 뭘 먹느냐고 물었더니 국수라며 밀가루를 반죽하고 있었다. 얼마 뒤 다됐느냐고 물었다. "아직 저녁시간도 안됐는데 뭘 그리 재촉하느냐"고 약간 짜증 섞인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날따라 나는 배가 고팠다. 부엌으로 가봤더니 아직 반죽상태였다. 약간 화가 나서 "그럼 내가 할까?"라고 물었더니 "그렇게 하던지"라고 대답했다. 그러니 화가 더 났다. 그렇다고 내가 국수를 할 수도 없고 기분만 나빠졌다.
슬그머니 밖으로 나와 걸었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걸었다. 걷는 것을 바라보며 걸었다. 그런데 조금 전 화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그냥 편안했다. 화가 나로부터 떠나간 것이다. 다시 집안으로 들어가 국수를 먹었다. 여기서 말하는 '화'는 마음의 부정적 감정이요, '나'라고 하는 것은 그 감정을 바라보는 의식이라는 마음이다. 사람에게는 감정이라는 마음의 요소와 그 감정을 바라보는 의식이라는 마음의 요소가 있다. 감정은 변덕스러워서 쉽게 일어나고 사라지지만 의식이라는 마음은 본질적인 요소로서 변함이 없다. 그러므로 감정이라는 마음이 어떠한 형태로 일어나고 사라지는 지를 바라보고 알아차릴 수 있는 힘이 있다.
"국수 다 됐어?"라는 말을 들은 아내가 '남편이 배가 고픈가 보구나'라고 인식하고, "금방 준비할게"라고 말했다면 내 마음을 알아차린 것이다. 그러나 "아직 저녁시간이 안됐는데 저녁은 무슨"이라고 대답했다면 마음을 알아차리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받아들일 준비도 안 된 셈이다. 그러니 나는 내 마음을 알아주지 못하는 아내가 원망스러워진 것이다. 이처럼 삶의 과정에서 화는 흔히 일어나지만 제대로 다스리는 경우는 드물다.
대인관계에서 알아차림은 서로를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하다. 알아차림의 힘을 키우기 위해서는 우선 내 마음을 편안하게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마음에서 일어나는 감정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감정이 부정적인 것이라면 감정을 내려놓아야 한다. 위에서 아내에게 화가 났다면 화가 사라져야 아내와 편안하게 만날 수 있다. 나는 화를 알아차리고 사라지기를 바라며 슬그머니 밖으로 나온 것이다. 걷기명상으로 화가 사라지자 안으로 들어갔고 화가 없으니 마음이 편안해져 아내를 받아들일 수 있었다.
감정을 바라보는 순간의 알아차림은 삶을 바꿔준다. 걷기명상은 마음을 고요하게 하고 상황을 알아차리게 해 마음을 평화의 상태에 이르게 한다. 알아차림의 힘은 정말 신비롭다. <박태수 제주국제명상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