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수명의 문화광장] 질경이 꽃

[장수명의 문화광장] 질경이 꽃
  • 입력 : 2022. 04.19(화) 00:00
  • 최다훈 기자 orca@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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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이 고인의 영전에/ 국화 한송이 바칠 때에 용서하세요./ 질경이 꽃 하나 캐다 올리겠나이다.

하필 마찻길 바퀴자국 난/ 굳은 땅 골라서 뿌리내리고 꽃 피운다하여 차화(車花)라고도 부르는 잡초입니다./ 독재와 독선, 역사의 두 수레바퀴가 지나간 자국 밑에서/ 어렵게 피어난 질긴 질경이 꽃 모습을 그려봅니다./ 남들이 서쪽으로 난 편하고 따뜻한 길 찾아다닐 때/ 북녘 차가운 바람/ 미끄러운 얼음 위에 오솔길 내시고/ 남들이 색깔이 다른 차일을 치고/잔칫상을 벌일 때/ 보통 사람과 함께/ 손 잡고 가자고 사립문 여시고/ 남들이 부국강병에 골몰하여/ 버려 둔 황야에/ 세든 문화의 집 따로 한 채 만들어 세우시고/ 이제 정상의 영욕을/ 역사의 길목에 묻고 가셨습니다./ 어느 맑게 개인 날/ 망각에서 깨어난 질경이 꽃 하나/ 남들이 모르는 참용기의 뜻,/ 참아라 용서하라 기다려라/ 낮은 음자리표 바람소리로 전하고 갈 것입니다.'

이 시는 (고)이어령 교수님이 '영전에 바치는 질경이 꽃 하나의 의미'라는 제목으로 노태우 대통령 영전에 바쳤던 조시(弔詩)다. 서울대병원에 입원하고 계셨던 이어령 교수님은 노태우대통령 서거 소식을 접하고 컴퓨터 입력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쇠약해진 몸이라서 음성으로 입력해서 전달하게 돼 죄송하다며 유족들에게 전달했다고 한다. 카랑카랑하고 눈빛이 깊고 강렬한 고인이 떠올라 잠시 목이 메었다. 잔잔한 감흥이 시를 읊조리는 눈으로 입술로 가슴으로 타고 내렸다. 저항의 몸짓을, 진보의 열정을 심어준 이어령 교수님.

이제 곧 새로운 정부가 시작된다. 하지만, 요즘 정치권은 연일 시끄럽다.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문재인정부와 5월 10일부터 시작 될 윤석렬정부 간의 갈등이 극에 달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서로 국민을 위해서라는데, 국민의 한 사람인 나는, 그 어느 쪽도 국민을 위하는 것 같지 않다. 오히려 그들의 논리에 서로 맞추려는 듯이 보인다. 게다가 간혹 걱정 섞인 어투로 차기정부가 공안정부 어쩌구 하는 말을 들을 때면 등골이 오싹하다. 어떻게 일궈낸 민주주의인데 다시 20. 30년 전으로 돌아간다는 게 웬 망언이냐 말이다. 다시는 그런 시대를 우리아이들에게 물려줘선 안 된다. 내 달, 5월 10일 새로운 내각이 구성돼, 새정부가 앞으로 5년 동안 우리나라를 이끌어 갈 것이다. 부디 첫 마음이 변치 않은 소통하는 정부로 우리 국민의 안위와 국가의 위상을 드높여 주길, 간절히 바라고 바란다.

오늘은 4.19혁명 62주년을 맞는 날이다. 고귀한 목숨을 바쳐 민주주의를 일궈낸 열사들을 기리며, 언제나 질경이 꽃의 용기로 불의를 막아 낼 것을 다짐해 본다. <장수명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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