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의 온상 갈라파고스 제도의 고유종 자이언트거북. 위키코먼스
시간 흐르며 변해가는 언어생물학적 진화와 유사한 방식식물·지명 등 긴 세월 변형돼현재는 본래 뜻 파악 힘들어진화의 온상 갈라파고스 통해언어의 진화 양상 살펴보기
'나랏말ᄊᆞ미 듕귁에달아 문ᄍᆞᆼ와로 서르 ᄉᆞᄆᆞᆺ디 아니ᄒᆞᆯᄊᆡ 이런 젼ᄎᆞ로 어린 ᄇᆡᆨ셔ᇰ이 니르고져 호ᇙ배 이셔도 ᄆᆞᄎᆞᆷ〮내 제 ᄠᅳ들 시러 펴디 몯 ᄒᆞᇙ 노미 하니라'
이 글 잘 읽을 수 있으세요? 지금부터 약 563년 전인 1459년 간행한 ‘월인석보’ 1권 책머리에 실린 훈민정음언해 서문의 앞부분이다. 우리는 15세기 사람들과 말로 어느 정도 소통할 수 있을까? 이걸 학교에서 배웠으니 망정이지 어떻게 제대로 읽을 수 있겠는가. 우리 조상님들이 쓴 게 분명한 글인데 이제는 읽을 수가 없다. 그러니 우리가 지금 쓰는 말도 앞으로 563년이 흐른 후 후손이 보면 이와 같은 느낌이 들것이다. 또한, 세종대왕 시절에서 563년 이전으로 돌아가면 서기 896년경이 된다. 그러면 세종대왕께서도 말이 통하지 않는다고 답답해하실 것이다.
언어는 이처럼 변한다. 언어학자들은 언어가 단순히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변하는 것이 아니라 생물학적 진화와 유사한 과정으로 진화한다고 한다. 정말 신기한 일이다. 언어의 진화는 생물학적 진화와 정말 유사할까? 어떤 점이 유사하고 어떤 점이 다를까?
필자는 제주도에서 태어났으니 원주민이다. 부모님도 할아버님의 할아버님도 제주도 원주민이시다. 그러니 제주어를 유창하게 구사한다. 그러나 그건 나 혼자만의 생각일 뿐 실제로는 제주어를 잘 모른다고 하는 게 맞는 것 같다. 이제 나는 독자들과 함께 지난 60여 년간의 제주도 여행 중에 보고들은 바를 여기에 기록하고자 한다. 여행의 기간이 워낙 기니 할 말도 많다. 사실 지난 1년 4개월 동안 에스앤에스(SNS)를 통해서 '이야기 제주 자연사'를 연재해 왔다. 대부분은 제주도의 식물 이름에 대해서다. 식물의 이름 중에는 알타이어에서 온 것도 있고 아이누어에서 온 것도 있다. 그리고 그 외의 언어에서 온 것도 있다. 그러니 그건 제주도 원주민의 고향이 어디인지를 생각하게 하는 것들이다.
제주도가 처음에는 무인도였을 것이다. 세월이 흐르면서 점차 이곳으로 사람들이 이주해 오기 시작하면서 유인도가 됐을 것이다. 이런 이주는 수 만 년 전부터 지금까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어떤 경우에도, 그게 의도적이었던 아니면 어떤 사고였던지 그들이 공통으로 꼭 갖고 온 것이 있었으니 그게 바로 말이다. 그들이 고향에서 사용하던 언어다. 북쪽에서 온 사람들은 북쪽의 언어를, 남쪽에서 온 사람들은 남쪽의 언어를 가지고 왔다. 이런 말 중에는 오늘날까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는 게 있는가 하면 그 긴 세월 동안 변형에 변형을 거듭하면서 원형을 잃어버린 채 이제 그 말이 어디서 누가 갖고 온 것인지 짐작조차 할 수 없게 된 것들도 많다. 그러나 그 중엔 식물 같은 사물의 이름에 깊게 새겨져 온전히 수 만 년 전 그들이 가지고 온 그대로 남아 있는 것들도 많다. 다만 오늘의 우리 세대에서 그 본래의 뜻을 잊어버리고 껍데기만 읊조리는 말이 부지기수로 많아져 버린 것이다.
훈민정음 언해본
땅이름에도 그 뜻을 알다가도 모를 말들이 수없이 박혀 있다. 제주도 원주민이라고 해서 다 아는 게 아니다. 수많은 삼춘들을 통해 들어 왔고, 지금도 사용하고 있지만 아리송한 이름들이 너무 많은 것이다. 전문가들이 연구하고 발표한 연구성과들도 많다. 모두 훌륭한 학자들이고 그간의 노고에 경의를 표할만하다. 찬탄을 금치 못할 정도로 이해가 쏙 되는 부분도 많다. 그렇다고 모두가 다 풀린 건 아니다. 아직도 아리송하게 느껴지는 말은 많다. 내가 60 수년 전 이 섬에 도착했을 때 가장 궁금했던 것은 바로 이 땅이름들이었다. 제주도가 무슨 뜻인가? 한라산은 무슨 뜻인가? 서귀포가 무슨 뜻인가? 오름은 무슨 뜻이며 곶자왈은 무슨 말인가? 관련 학계에선 거의 해결된 것으로 보는 것 같다.
그러나 60여 년을 이곳 제주도를 여행한 사람이 보고들은 바를 바탕으로 생각해 보면 이 말들의 뜻이 풀렸다고 보기 어려운 부분이 많이 남아 있는 것이다.
여행에서 혹은 자연사탐사에서 지명은 가장 중요한 요소다. 지명을 모르고 어떻게 기록할 수 있겠는가. 다만 자연사탐사에서는 그 땅에 있는 자연을 대상으로 하고 언어학에서 지명을 다룰 때는 그 말 자체를 대상으로 하는 게 다를 뿐이다. 그러나 지명이라는 것은 그 땅의 자연사 혹은 문화사 측면의 정보를 간직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필자는 수많은 탐사에서 지명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고 파악해 보려고 노력해 왔다. 나보다 훨씬 많은 탐사를 했고, 그걸 기록으로 남긴 학자 중에는 이런 지명에 대해 궁금해하던 중 아예 언어학자를 겸한 이들도 많다. 자연사 전공자가 세계 오지의 사전을 편찬한다거나 그 원주민들의 이주 경로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결과를 발표한 학자들도 많다. 그건 분야가 다르긴 해도 연구방법에 유사한 면이 있기 때문이다.
제목에서 갈라파고스를 쓴 이유는 짐작하겠지만 언어란 진화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갈라파고스는 21개의 섬이 적도를 중심으로 퍼져 있다. 여러 개의 섬으로 구성해 있어 흔히 갈라파고스 제도라 한다. 에콰도르공화국에 속하며, 화산섬들로 이루어졌다. 갈라파고스라는 섬 이름은 1570년에 출판한 아브라함 오르텔리우스(Abraham Ortelius)의 아틀라스에서 '거북섬(Insulae de los Galopegos)'이라고 명명한 데서 유래한다. 갈라파고스제도는 왜 진화론의 무대가 됐을까? 그곳에선 대체 어떤 일이 벌어진 걸까?
<김찬수 한라산생태문화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