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觀] 속편본색
  • 입력 : 2022. 06.24(금) 00:00
  • 김채현 기자 hakch@ihalla.com
  • 글자크기
  • 글자크기

영화 '범죄도시2'

[한라일보] 680만의 관객을 동원하며 그야말로 빅히트를 기록한 '범죄도시'를 굉장히 재미없게 봤다. 액션은 잦고 강력했지만 내게 영화는 어떤 한순간도 강렬한 인상을 남기지 못했고 범죄물 특유의 카타르시스를 느끼기엔 불편한 설정들이 내내 걸려 쉬이 장면이 넘어가지도 않았다.

체할 것 같은데 계속 음식이 나오는 기분, '도대체 이 영화를 왜 이렇게들 좋아하는 거야'라고 생각하며 '범죄도시'에 열광하는 이들 사이에선 어떤 말도 얹지 않았다. 반면 '마녀'는 기대 이상으로 재미있게 봤다. 국내에서 제작되는 상업영화 중 여성 히어로물이 많지 않았기에 액션의 변별력이 충분히 느껴졌고 배우들의 매력과 캐릭터의 개성이 잘 어울렸던 작품이라 극의 개연성의 조금 부족하다고 느껴져도 즐겁게 넘어갈 수 있는 구석이 많았다.

팬데믹에서 엔데믹으로 넘어가는 시기, '범죄도시'와 '마녀'의 속편이 차례로 극장가를 찾았다. '범죄도시2'는 무려 1100만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하는 슈퍼 히트를 기록 중이고 '마녀Part2.The Other One'(이하 '마녀2') 또한 개봉 첫 주 1위를 차지하며 1주 만에 180만명에 가까운 관객을 동원하고 있다. 하지만 아쉽게도 영화에 대한 대중의 평가는 엇갈리는 중이다. '범죄도시2'에는 만장일치에 가까운 호평이, '마녀2'에는 아쉬움과 실망감을 드러내는 여론이 큰 편이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개운했던 전자의 감상과 찝찝했던 후자의 감상이 확연하게 갈렸다.

'범죄도시2'는 장르물의 매력에 더해진 영리한 설정들이 눈에 띄는 영화다. 먼저 2시간이 훌쩍 넘는 러닝타임이 많은 요즘 106분이라는 콤팩트한 시간 동안 한 눈 팔지 않고 범인 잡기에 몰두한다. 'the roundup'이라는 영문 제목에 걸맞게 범인을 검거하는 메인 플롯에 집중하는 영화는 말 그대로 '나쁜 놈을 잡기 위해' 동분서주하지만 길을 잃지 않는다. 또한 마블리라는 애칭으로 국내를 넘어 할리우드까지 진출한 마동석의 존재감에 더해진 빌런 손석구의 매력이 황금비율을 이루며 관객들을 사로잡는다. 무적의 형사와 전사 없는 살인마의 구도는 끝을 알고 달려가는 시간 동안에도 손에 땀을 쥐게 하는데 전혀 다른 개성을 가진 배우들의 격돌이 자주 짜릿한 파열음을 만들어낸다. 시리즈를 예고한 만큼 후속편에 빌런으로 출연하게 될 배우들의 모습 또한 기대감을 갖게 만드는 부분이다. 무엇보다 '범죄도시2'는 한 편의 작품으로서 충분한 재미를 제공하는 영화다. 전작을 보지 않았더라도 이해가 어렵지 않으며 뚜렷한 기승전결과 안도감을 안겨주는 해피엔딩을 통해 보는 이들이 원하는 지점으로 함께 가는 영화다. 일견 특별한 새로움은 없는 듯 보이지만 이 정도로 정확한 욕심을 냈다는 것, 이 우직한 선택은 함정에 빠지지 않은 영리함이 아닐까.

반면 '마녀2'는 세계관의 함정에 빠진 영화다. 전편과 후속편을 잇는 교두보 역할을 하는 파트2는 오프닝과 엔딩의 10여분을 제외하고는 그다지 필요하지 않은 장면들로 구성돼 있다. 무려 2시간 20분 동안 소모적인 캐릭터들을 보는 일은 고통스럽다. 서사는 정체되어 있고 액션은 빨리 감기를 한 것처럼 나 홀로 질주하는 영화. '마녀'라는 작품이 가장 큰 매력 중 하나가 김다미라는 신인 배우를 발굴하고 그 특별함을 온전히 보여주었던 것이었기에 김다미를 잇는 오디션 출신 신인 신시아에 대한 기대감도 컸다. 하지만 '마녀2'에서 신시아는 제대로 연기할 기회를 얻지 못한다. 이렇게 타이틀 롤의 역할이 무색해진 사이 전편의 캐릭터들도, 새로 등장한 캐릭터들도 방향을 잃고 후속편을 위한 도구로 쓰이기도 한다. 세계관이라는 거대한 계획 안에 '마녀2'는 속편의 매력도 온전한 한 편의 개성도 획득하지 못한다. '마녀2'를 보러 가서 나온 결론이 '마녀3'를 봐야지 알겠다는 감상이라면 과연 한 편의 작품이 온전히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을까.

마블 유니버스는 물론 수많은 작품들이 세계관을 만들어 내고 그 안으로 관객들을 초대하고자 한다. 거대한 세계관은 강력한 팬덤을 부르지만 세계관이라는 거창함은 오히려 독창성의 적이 되기도 한다. 무엇을 취하고 무엇을 버릴 것인지라는 선택과 집중의 문제, '범죄도시2'와 '마녀2'는 넥스트 레벨로 나아가기 위한 한국형 프랜차이즈물들이 보여주는 흥미로운 결과물들이다. 두 작품 모두 세 번째 스텝에서는 처음처럼 그리고 마지막처럼 러닝타임을 온전히 즐기는 작품으로 돌아오기를 기대한다.

<진명현 독립영화스튜디오 무브먼트 대표 (전문가)>
  • 글자크기
  • 글자크기
  • 홈
  • 메일
  • 스크랩
  • 프린트
  • 리스트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밴드
기사에 대한 독자 의견 (0 개)
이         름 이   메   일
5045 왼쪽숫자 입력(스팸체크) 비밀번호 삭제시 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