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신 보다 무서운 것이 사람이라서 우리는 좀비물을 무서워하면서도 즐기는 것이 아닐까. 좀비는 사람이 더 이상 사람이 아니니까, 동정의 시선이나 연민의 감정을 가질 필요가 없으니까 눈 앞에서 수많은 좀비들이 죽어 나간다고 해도 단발마의 비명은 터져 나와도 애도는 자리하지 않는다. 기술은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 측면에서 해가 다르게 괄목할만한 성장을 이뤄내고 있어서 대중들은 좀 더 현실에 가까운 자극을 영화로부터 원한다. 극장이라는 안전한 공간 안에서 스크린이라는 결계를 앞에 두고 최대한의 몰입과 자극을 관람의 형태로 체험하는 일, 많은 대중들이 오락의 형태로 영화를 즐기는 방법이기도 하다.
올 여름 극장가를 찾는 영화 <비상선언>은 항공 재난 블럭버스터를 표방한 대형 오락 영화로 <관상>과 <더 킹>을 연출했던 한재림 감독의 신작이자 칸 영화제에 공식 초청된 작품이기도 하다. 또한 칸 영화제 남녀 주연상 수상자인 배우 송강호와 전도연을 비롯 월드스타 이병헌과 주연배우로 위치를 확고히 한 임시완, 김남길, 김소진, 박해준 등 배우들의 면면까지 화려한 그야말로 여러모로 화려한 진용을 갖춘 작품이다.
<비상선언>은 인천에서 하와이로 이륙한 KI501 항공편에서 원인불명의 사망자가 나오고, 비행기 안은 물론 지상까지 혼란과 두려움의 현장으로 뒤바뀌는 아수라장을 그려내고 있는 영화다. 비행기 테러를 예고했던 용의자를 비롯해 승객들과 승무원들을 포함한 하늘의 사람들은 지옥의 하늘을 떠나 다시 착륙하기 위해, 테러범을 추적하는 형사와 재난 상황에 직면한 국토부 장관을 비롯한 땅 위의 사람들은 비상선언을 선포한 비행기 속의 사람들을 구조하기 위해 긴박감 넘치는 공조를 펼친다. <비상선언>은 중반부까지 엄청난 속도감으로 이륙하고 운행한다. 극의 초중반 한정된 공간 안에서 벌어지는 영화의 상황은 관객의 감각을 뒤흔든다. 한정된 공간을 다이내믹하게 잡아내는 카메라와 항공 재난 영화로서의 실재감을 증폭시키는 음향효과는 대단히 인상적이다. 관객들이 재난 블럭버스터에 기대하는 안전한 공포 체험은 극의 중반부까지 강력한 흡입력을 발휘한다.
중반부 이후 <비상선언>은 극의 노선을 튼다. 내용 자체가 바뀌는 것은 아니지만 오락영화로서의 소임을 충분히 했다고 생각한 영화는 하고 싶은 말을 삼키지 않고 꺼내 놓기 시작한다. 영화는 관객의 감정에 호소하기 시작하는 드라마로서 장르를 선회하는데 대체적으로 이러한 장르에서 감정적 호소가 감동적 귀결이 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지점에 결말을 착륙시키는 선택을 한 작품이 <비상선언>이다. 갑작스럽게 닥친 재난 상황에서 발생한 공포는 당연히 죽음에 대한 것이다. 정체 모를 바이러스로 인해 전염되어 나도 나와 가까운 이들도 죽을 것이라는 이 공포는 순식간에 모든 이들을 무너지게 한다. 또한 숙주가 제거된 상황에서 살아 남은 이들은 접촉자들, 즉 죽음에 더 가까운 이들로부터 멀어지기 위해 필사적이 된다. <비상선언>은 팬데믹 이전에 제작된 영화이지만 이 작품의 중후반부는 팬데믹을 관통하는 우리의 현실과 너무도 닮아있다. 극의 전반부가 장르 영화의 컨벤션을 영리하게 활용한 즐길만한 공포를 전해준다면 중반 이후는 기시감이라고 하기에도 소름 끼치는 전염병 시대의 군상들을 보여주는 다큐멘터리로 느껴질 때가 있을 정도다. <비상선언>이 기존의 항공 재난 영화와 전혀 다르게 느껴지는 것은 이 부분에서 나온다. 영웅이 나타나 범인을 죽이고 무사히 착륙해 가족의 품으로 귀환할 것이라는 기대는 조금씩 그리고 천천히 무너진다. 일명 K-신파 뒤에 감동으로 이어지는 안전한 해피엔딩과도 거리가 먼 지점에 영화가 착륙하는 것이다.
<비상선언>은 재난 이후의 모습을 그리는데 많은 공을 들이는 영화다. 천재지변을 맞닥뜨린 인간들의 아우성과 그 속에서 꿈틀거리는 각기 다른 감정들이 익숙한 듯 낯설게 그려진다. 갑작스러운 재난 보다 무서운 것은 재난의 피해자이기도 한 소수자를 향한 공포 그리고 그 공포를 넘어서는 강력한 혐오임을 힘주어 말하는 영화는 때때로 다소 선언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하늘 위에서 우연한 경로로 감염자가 된 이들은 혐오의 숙주가 되고 해외로 놀러 갔다가 바이러스를 퍼트리게 되는 공포의 대상으로 땅 위의 사람들로부터 거부당한다.
그 거부는 집요하고 줄기차다. 마치 코로나 팬데믹 시기에 클럽발 감염자의 신상을 추적하고 혐오를 양산하던 모습이 떠오르게 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혐오는 타인을 향한 소리 없는 총격 임을 알고 있는 우리에게 이 영화의 선언은 그래서 씁쓸하지만 수긍할 수 밖에 없는 것이기도 하다. 나는 이 영화를 보며 꽤 많은 비명을 질렀고 내내 긴장했고 자주 마음이 아팠지만 눈물을 흘릴 수는 없었다. 영화가 영화처럼 느껴지지 않던 어떤 순간 마다 어쩌면 이 영화를 만든 이들은 안전한 구조도, 완전한 구원도 거짓말처럼 느껴지는 우리가 사는 세상을 향해 그건, 혐오에요 라고 말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과연 어떤 영웅이 혐오라는 감정으로부터 인간을 구원할 수 있을까. 그것은 애초부터 영웅이 할 일이 아니다.
<진명현 독립영화스튜디오 무브먼트 대표 (전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