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양훈의 한라시론] 경계인 감독의 시선

[김양훈의 한라시론] 경계인 감독의 시선
  • 입력 : 2022. 11.03(목) 00:00
  • 김채현 기자 hakch@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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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일보] 지난달 22일 양영희 감독의 다큐멘터리 '수프와 이데올로기'를 감상했다. 상영관은 94석의 작은 규모였는데 관람객은 20여명 정도였다. 토요일이라 관람객이 많으리라 생각했는데 실망했다. "어머니의 닭백숙 한 그릇에는 어떤 언어로도 이해할 수 없었던 모든 것들이 담겨있다."는 양익준 배우 겸 감독의 감상평이 무색했다.

이 다큐는 양 감독이 제작한 가족사 삼부작 중 '디어 평양'과 '굿바이 평양'에 이은 마지막 작품이다. 앞선 두 편은 북송된 세 오빠와 북한에 사는 조카가 주인공이다. 1971년 니가타 항에서 북송선을 타고 북한으로 떠나는 오빠들에게 손을 흔들 당시 양 감독은 여섯 살이었다. 오빠들을 북송선에 태운 것은 조총련 간부였던 아버지의 소망이었고, 어린 소녀는 아무 것도 모른 채 그저 헤어짐이 슬퍼 눈물을 흘렸다. 아버지가 조국으로 여겼던 북한은 일본에서 성장한 오빠들에게는 살아내기 어려운 나라였다. 이후 어머니는 북에 있는 오빠와 손주들에게 필요한 물건을 사보내기 바빴다. 한반도 분단체제가 가져온 역사의 무게는 이후 더욱 가족을 짓눌렀다. 이러한 이해할 수 없는 가족사를 기록하기 위해 양 감독은 카메라를 들고 가족을 찍기 시작했다.

일본의 민족차별 속에서 주변인으로 사는 것도 모자라, 자이니치(在日)들은 한반도 분단체제의 대리전 한가운데에서 경계인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그들이 견뎌온 피폐한 삶은 조선멸망과 민족분단의 업보였다.

마지막 다큐는 어머니를 주인공으로 제주4·3을 다뤘다. 조총련 간부의 딸로 태어난 그녀였지만, 아버지와 어머니의 이념과 사상을 비판 없이 따를 수는 없었다. 양 감독은 제주4·3을 겪은 어머니가 평생 숨겨온 고통과 비밀을 알고 나서야 비로소 가족사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었다. 카메라를 통해 바라보는 양 감독의 시선은 언제나 담담하다. 포장하거나 윤색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우리에게 보여준다. 우리의 마음을 울리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제주4·3을 직접 겪었던 어머니는 70년 만의 고향방문에서 담담했다. 치매 때문에 기억이 가물가물한 어머니를 바라보며 양 감독은 대신 회한의 눈물을 흘렸다. 그러나 역사의 무게에 짓눌려 소멸해 가던 가족은 어머니의 제주방문에서 부활의 기운을 얻은 듯하다. 진실을 찾는 일은 그래서 값진 것이다.

북한 가족들에게 해를 끼칠 수도 있는데 굳이 영화를 만드느냐는 인터뷰 질문에 양 감독은 "몇 년 후가 될지 모르겠지만, 우리 가족들이 '이런 바보 같은 시대가 있었다.' 말하며 술이나 한잔 하면서 내 영화를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영화관을 나와 지하철을 타고 시청역 7번 출구로 나왔다. 촛불대행진 집결지였다. 사람들이 구름떼처럼 몰려들었다. 촛불을 드는 사람들은 불가능한 것을 알면서도 애쓰는 사람들이다. 바보들이 설치는 시대에 살고 싶지 않은 것이다. 이태원 참사에 희생된 분들에게 깊은 애도를 보낸다. <김양훈 프리랜서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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