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일보] 안과의사는 남의 눈의 티끌을 오히려 내 눈의 들보처럼 여기고 돌봐야 하는 직업이다. 지금까지는 그대로 방치하면 가래로도 막기 어려워지는 질환들을 호미로 막으시라 소개해드렸다면, 이번 회에는 조금 천천히 두셔도 좋은 경우를 안내해 보려고 한다.
▶결막하 출혈=통증을 비롯한 특별한 증상이 없었는데 갑자기 눈이 빨갛게 되거나, 주위에서 빨리 병원에 가보라 권해서 오시는 분들이 있다. 눈의 흰자에 있는 얇은 점막 조직인 결막 아래, 갑자기 출혈이 생겨 피가 고이면 이를 결막하 출혈이라고 한다. 눈을 심하게 비비거나, 무거운 물건을 들거나, 재채기를 심하게 하거나 순간적으로 혈압이 올라가는 경우 또는 불면, 스트레스 때문에 주로 생긴다. 뇌혈관이나 심혈관에 기저 질환이 있어 혈액을 묽게 만드는 성분의 약을 복용하는 분에게도 발생할 수 있다. 이 증상은 피부에 멍이 들었다가 자연스럽게 사라지는 것처럼 특별한 치료를 하지 않아도 2주 전후면 저절로 사라진다. 결막하 자체는 큰 문제가 아니지만, 너무 자주 반복될 경우 피검사 등을 통해 원인을 찾아야 한다.
▶검열반=눈 흰자에 이상한 것이 생겼다거나 흰자가 점점 탁해지는 느낌이 들어 내원하는 경우다. 검은자 양쪽의 눈 흰자위 결막이 변성돼 노랗게 또는 하얗게 튀어나온 결절을 말하는데 주로 나이가 들면서 자연스럽게 생긴다. 심각한 병이 아니므로 특별히 치료할 필요는 없지만, 깨끗해야 할 흰자위가 노랗게 볼록 튀어나와 보이는 것이 미관상 거슬릴 수는 있다. 약물로 없어지지 않아서 수술로 제거해야 하지만, 잘못하면 오히려 흉터나 충혈로 더 흉해질 수 있어 권하지는 않는다. 노안이 아닌 경우에는 자외선이나 염증, 바람, 먼지가 주요 원인이다. 충혈이 동반될 때는 인공눈물이나 결막염 관련 약물 치료를 하기도 한다.
▶노인환=검은자의 주변부가 하얗게 되거나 무언가 덮이는 증상이다. 각막 주변부에 지방이 쌓여 하얀 고리가 생기는 것을 노인환이라고 한다. 말 그대로 자연적인 노화의 과정이므로 특별한 치료가 필요 없고, 시력에도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다만 40대 이하에서 발생하는 경우 고지혈증을 의심해 보아야 한다. 양쪽이 아닌 한쪽에만 생긴다면, 다른 쪽 목의 혈관(경동맥) 폐쇄 여부를 확인해볼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는 세계적으로도 의료 접근성이 우수한 것으로 첫손에 꼽힌다. 그래서인지 애써 시간을 내어 병원까지 오셨는데 별 게 아니라고 말씀드리면 오히려 당황하고 섭섭해 하시기도 한다.
하지만 치료가 필요 없는 질환을 명확하게 밝히고, 약의 오남용을 막는 일 또한 의사의 소명 중 하나다. 위와 같은 병명이라고 진단했다면 믿으셔도 좋다. 다만 당장 치료가 필요하지는 않더라도 추가적인 검진이 필요한 경우도 있으니 병원을 방문해 확인하는 일은 건강을 챙기는 좋은 습관이다. <김연덕 제주성모안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