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觀] 우리가 겨울을 지날 때

[영화觀] 우리가 겨울을 지날 때
  • 입력 : 2022. 12.16(금) 00:00
  • 김채현 기자 hakch@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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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그 겨울, 나는'.

[한라일보] 겨울은 명백한 계절이다. 특히 가난한 청춘에게 유독 그렇다. 뜨거운 여름도 만만치 않은 힘든 계절이긴 하지만 묘하게도 여름과 청춘은 긍정적인 기운을 만들어 낸다. 흐르는 땀방울도 싱그럽고 벅차게 뛰는 몸짓도 열정적으로 비친다. 선명하고 다채로운 계절 특유의 활기 덕이다. 많은 청춘 영화들이 여름을 택해 관객들에게 어떤 한 때를 선사하는 것도 같은 이유일 것이다. 여름날의 청춘 로맨스를 그린 수많은 영화들의 꾸준한 인기를 봐도 그렇다.

오성호 감독의 장편 데뷔작 '그 겨울, 나는'은 삶의 겨울을 통과하는 스물아홉 동갑내기 연인들이 어느 겨울을 지나가는 이야기다. 여름 청춘 영화와는 다르다. 심지어 크리스마스 시즌을 배경으로 하는 로코 장르의 작품도 아니다. 이 계절은 낭만이 끼어들 틈 없이 싸늘하다. '그 겨울, 나는'의 주인공 둘 모두는 취업 준비생이고 부모님이 원치 않아 작은 집에서 비밀 동거를 하고 있으며 서로 사랑하지만 기댈 수 있는 미래도, 배경도 없는 아홉 수의 청춘들이다. 따지자면 혜진 보다는 남자인 경학 쪽 사정이 더 여의치가 않은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경학은 어머니가 자신의 이름으로 저질러버린 대출의 상환금도 갚아 나가야 한다. 한 달에 백만 원이 넘는 돈이 경학에게 쉬울 리 만무하다. 경찰 공무원을 준비하던 경학은 시험을 포기하고 친구에게 중고 오토바이를 사서 배달이라는 직업을 택해 세상이라는 겨울로 나선다. 혜진은 원하던 취업에 실패하고 차선을 선택해 경학과는 또 다른 세상에 발을 디딘다. 찢어진 패딩을 입고 도로를 달리는 경학과 단벌 코트로 낯선 공간 안에 설 자리를 찾는 혜진. 두 사람에겐 시차가 생기기 시작하고 삶의 오차 범위는 줄어들지 않는다.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겨울을 겪어야 한다. 계절의 어김없는 방문에 더해 몸이 웅크려지고 뻣뻣해지는 궁지의 시기 또한 불쑥불쑥 찾아온다. 영화 속 잦은 불행과 불운 앞에서도 불평과 불만을 줄일 수 있는 단 하나의 이유는 사랑뿐이다. 내 곁을 지키고 있는 한 사람이 있는 두 사람은 그래서 이토록 혹독한 겨울을 버티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사랑이 얼마나 간사한 감정인지 알고 있냐는 주인공 어머니의 말처럼 겨울의 연인들 앞에서 사랑은 이상하게 사치스러운 감정처럼 휘몰아친다. 가장 뜨거웠던 것이 순식간에 차갑게 돌아서기 좋은 계절도 겨울이라는 매서운 진실을 영화는 피하지 않고 물끄러미 쳐다본다.

'그 겨울, 나는'은 사랑이 어떻게 변하냐는 고전적인 질문에 답 하는 영화다. 변할 수 있다고 사랑도 계절처럼 변할 수 있다고, 우리는, 누구든 언제든 사랑하고 상처 입고 아물 수 있다고. 영화는 이제는 사어처럼 느껴지는 진심과 진짜를 위해 지켜보고 담아내는 과정을 묵묵히 완성시켜 나간다. 이를테면 진부하다고 여겨지는 것들과 정면 승부를 펼치는 영화가 '그 겨울, 나는'이다.

'연애경험', '눈물' 등 단편 작업을 통해 가난한 사랑 노래라는 클리셰를 정면으로 다뤘던 오성호 감독의 뚝심에 이 작품으로 부산국제영화제 올해의 배우상을 수상한 배우 권다함의 사력을 다한 체화, 걸그룹 포미닛 출신으로 '생일'에서도 인상적인 연기를 선보였던 배우 권소현의 섬세하고 안정적인 호흡이 더해져 매섭게 뜨거운 한 철을 온전히 그려내는 영화 '그 겨울, 나는'.

다 안다고, 그 힘든 매일과 거칠고 모진 거절들을 다 알고 있다고 말하지는 않지만 모르지 않는다고, 그 아픔과 고통의 크기를 작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영화. '그 겨울, 나는'은 그렇게 아득한 어둠을 진득한 걸음으로 기어코 뚫고 지나간다. 뜨겁고 단단한 한국 독립영화의 매력, 오성호라는 주목할 만한 감독의 개성, 그리고 권다함, 권소현이라는 두 배우를 향한 기대감까지 선사해주는 이 겨울의 선물 같은 영화다.

<진명현 독립영화 스튜디오 무브먼트 대표(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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