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일보] 나는 가끔 내가 처한 상황이 힘들 때 피하고자 하는 마음이 일어난다. 이럴 때 문득 생각나는 것은 "아무리 사는 게 힘들더라도 혼자 살기보다는 앓아누운 남편이라도 있는 게 낫다"라고 하는 어른들의 말씀이다. 설사 불편하더라도 '그 자리에 있는 게 없는 것보다 낫다. 든든하다'라는 의미일 것이다. 요즈음 같으면 어림없는 말이다. 있어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헤어지고 '혼자 사는 게 낫다'라고 하는 세상이다. 나의 경우 아내가 있는 집으로 갈 때는 다리에 힘이 생기고 발걸음이 빨라진다. 그러나 아내가 어디 가고 없을 때는 왠지 허전하고 힘이 빠지면서 발걸음이 무겁다. 우리의 일상에서 남편이 아프거나 아내가 아프면 괜히 짜증이 나고 함께 하기 싫어진다. 가족의 소중함, 빈자리의 의미를 잘 모르는 현대인들의 이기적인 현상이다.
마음을 의지할 수 있는 정신적인 지주를 잃은 사람일수록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도 붕괴되기 쉽다. 빅토르 프랭클에 의하면 제2차 대전 당시 독일의 아우슈비츠 수용소에는 포로들이 많았는데 이들은 한결같이 1944년 성탄절에는 집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희망에 부풀어 있었다. 그렇지만 희망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자 실망과 낙담이 퍼지면서 대량의 사망자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이처럼 '미래의 희망이나 의지할 정신적 기둥'을 발견한 사람, 미래에 '자기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나 일'이 있는 사람은 강인한 정신적 저항력을 가질 수가 있다. 프랭클의 경우도 아내와 부모가 수용소에서 나와 '기다리고 있다'는 믿음이 있었고 빼앗긴 그의 원고를 찾아 프랑클 심리학의 체계를 발표해 평가를 받고자 하는 사명감이 있었으니 그 지옥 같은 생활 속에서도 정신적인 지주에 의지해 살아남을 수 있었다.
삶의 목표가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삶에 대한 의지가 달라진다.
내가 존재에 대한 긍지를 가질 수 있을 때 내게 주어진 '인생의 의미'와 '해야 할 일'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나 자신이 귀하게 여겨지지 않을 때는 그 행위에 대해서 자신도 모르게 "나 따위는 있어 봤자 짐이야"라고 부정적인 말을 하거나 "나는 아무 데도 도움이 안 돼"라고 생각한다. 그러한 마음이 일어나면 힘이 빠지면서 아무런 행동도 하기 싫어진다.
가끔 가족 간에 갈등이 일어난다. 어떨 때는 그 갈등이 내 마음을 무겁게 해 그 갈등에 매여 있다. 이럴 때 빅토르 프랭클은 그러한 나의 의식을 재구조화(reframing) 하라고 한다. 나 자신에 대한 부정적인 의식을 긍정적인 의식으로 전환하라는 것이다. 그가 나에게 보낸 부정적인 의식은 내가 그의 마음을 받아주지 않아서 화가 난 것이므로 그를 원망할 것이 아니라 나의 속 좁은 마음을 알아차리게 해준 그에게 감사한 마음을 가지라는 의미이다.
'원망'하는 마음에서 벗어나 감사하는 마음으로 그를 바라보면 나의 삶은 새롭게 창조된다.<박태수 제주국제명상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