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몽하다’ 등 유추조차 힘든 말들
토박이 시인 유년 시절 추억 빌려
에세이 형식에 담은 제주 이야기
단어 하나하나 사전적 의미 넘어
버티며 살아왔던 삶의 풍경 이해
일상 속에 잘 쓰이며 보존됐으면
책을 쓴 현택훈 시인은 제주에서 태어나 할머니와 어머니가 말하는 제주어를 들으며 유년 시절을 보냈다. 이제 중년이 된 그는 시인으로서 '제주어로 시의 언어를 품어야 하는 운명'이라고 말한다. 시인이 풀이하는 사전적 의미는 마치 시의 한 구절 한 구절처럼 '아꼽다'. 그래서 머리가 아닌 '마음'에 스며든다. 저자는 오름에 올라 맞는 제주바람에서 할머니와 엄마의 목소리를 느끼기도 한다. 오늘도 제주어 사전을 들여다보며, 시의 언어를 생각한다. '제주어'는 유네스코로부터 '소멸 위기 언어'로 지정되기도 했다.
<현택훈 글, 박들 그림, 출판사 걷는사람>
안재홍 서귀포시민의책읽기위원회 위원장이 '책 읽는 가족' 첫 순서로 오학수·이현진 부부와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서귀포시민의책읽기위원회 제공
2023년 한라일보는 서귀포시민의책읽기위원회와 책 읽는 가족을 찾아 떠난다. '행복한 가족을 만들고 싶다면 함께 책을 읽어라'라는 말이 있다. 책을 함께 읽지만 각자의 인생을 찾고 조금씩 더 이해하고 행복해질 것이라 믿는다.
▶대담=안재홍 서귀포시민의책읽기위원회 위원장
▷책 읽는 가족=오학수, 이현진 부부(남원LH새마을작은도서관 회원)
▶안재홍(이하 안): '제주어 마음사전'은 어떤 책인가요?
▷오학수(이하 오): 책 제목이 사전이지만 에세이라고 봐야 합니다. 제주에서 나고 자란 현택훈 시인이 '제주어'를 설명하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짤막짤막하게 녹여낸 책이라 쉽게 읽히더라고요.
▶안: 이 책을 고른 이유가 있나요?
▷이현진(이하 이): 저와 남편은 둘 다 육지 사람이에요. 남편은 2011년, 저는 2016년 제주로 내려와 살고 있는데 여전히 제주도 사투리는 이해하기 어려워요. 특히 나이 든 삼춘들이 하는 말은 완벽히 못 알아들을 때가 많고요. 외국어처럼 '제주어'라고 하기도 하잖아요. 제주도 언어를 쉽고 재밌게 배울 수 있을 것 같아서 이 책을 선택했습니다.
▶안: 아는 제주어가 좀 있던가요?
▷오: 실제로 자주 쓰는 말들도 있고, 뜻을 잘 모르는 말들도 한 번쯤 들어 본 것 같아요. 저는 결혼 전에 성산읍 시골 마을에 터를 잡고 살았는데, 외지 사람은 별로 없고 토박이 삼춘들이 대부분이었어요. 아무래도 사투리를 매일 접하다 보니, 이제 듣기평가는 자신 있죠! (웃음) 근데 '굴룬각시(내연녀)' 같은 단어는 처음 보네요.
▷이: 저는 책에 나온 총 60개 정도의 단어 중 3분의 1 정도만 알겠더라고요. '궨당', '아꼽다', '베지근하다' 그런 말은 많이 들었더니 이제는 그걸 대신할 표준어가 입에서 선뜻 나오지 않을 정도예요. 나머지는 너무 생소했어요. '닁끼리다(미끄러지다)', '오몽하다(부지런하다)', '코찡하다(길이나 크기가 가지런하고 고르다)'처럼 유추조차 할 수 없는 말들도 있었어요. '코찡호다'는 코가 찡하다는 줄 알았네요.
▶안: 일반적인 사전과 다른 점은 뭔가요?
▷이: 딱딱하게 뜻만 풀이해놓은 게 아니라 삶이 함께 들어있어요. 저자와 가족들의 역사를 기록하며 필요한 단어들을 소개한 거죠. '곤밥(벼농사가 어려워 쌀이 귀한 제주에서 제삿날에나 먹을 수 있었던 쌀밥)'을 설명할 때는 제삿날이면 할아버지 눈을 피해 음식을 입에 넣어주던 어머니를 떠올리고, 사고로 일찍 돌아가신 어머니와 외삼촌을 추억하며 "그리움은 '아시아시날(그 전의 전날)'에 옹송그리고 있다"고 표현되어 있어요. 역시 시인이라 그런지, 표현들이 주옥같아요. "헤엄을 치다 점프하는 곱세기(돌고래)는 바다의 무지개"처럼 예쁜 문장이 있는가 하면, "곤밥은 따뜻했던 어머니의 가슴 같다"는 대목은 아름다우면서도 마음이 아리더라고요.
▷오: 저는 중간중간 실려있는 현택훈 시인의 시를 덤으로 읽을 수 있어서 좋았어요. 서귀포에 '시옷서점'이라는 작은 책방을 운영하고 계시다는데, 한번 가보고 싶어졌어요.
▶안: 외지인으로서 사투리에 이질감보다는 호감을 갖고 있는 것 같네요.
▷이: 아이가 지금 다섯 살인데 네 살 때인가, 저한테 "무사?" "뭐 하멘?" 이라고 말을 하더라고요. 아마 어린이집에서 선생님들이 하는 말을 배웠나 봐요. 이제 막 말문이 트이기 시작한 아이가 제주어를 쓰니까 그게 그렇게 귀엽고 좋더라고요. 제주로 이주한 엄마들 중에는 아이가 표준어 쓰기를 바라는 분도 봤는데, 저는 제주어를 더 배웠으면 해요. 아마 초등학생이 되면 저보다 훨씬 잘하겠죠?
▷오: 이 책을 쓴 현택훈 시인이 1974년생이니까 만으로 40대 후반이에요. 그 정도 나이대 이후로만 일상에서 제주어를 자주 쓰는 것 같아요. 토박이라도 요즘 젊은 사람들은 제주어를 많이 쓰지 않더라고요. 표현은 시대에 맞게 조금씩 변하더라도 제주어는 일상속에서 잘 쓰이면서 보존됐으면 좋겠어요.
▶안: 이 책에는 60개가 넘는 제주어 어휘를 소개하고 있는데 특별히 정감 어린 단어가 있나요?
▷이: '곤밥' 편에서 "제주도는 양푼 공동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밥을 한 그릇에 놓고 같이 먹는 풍습이 있다… 마을에서 돼지를 추렴하면 마을 사람 모두에게 고기를 돌린다. 마을 전체가 양푼 속에 들어가는 것과 같다."는 구절이 인상적이었어요. 그리고 '궨당' 편에서는 저자가 그냥 잡아서 탄 택시에서 오촌 당숙을 기사로 만나죠. 제주에서는 한 다리 건너면 다 먼 친척이라는 말이 있잖아요. 이 작은 섬에서 버티고 살며 서로 챙기고 끈끈해지는 제주도 특유의 문화를 잘 보여주는 단어들이라 기억에 남네요.
▶안: 어떤 이들에게 이 책을 추천하고 싶으세요?
▷오: 제주에 살고 계신 분들이 보면 색다른 재미가 있을 거예요. 단어의 의미보다는 시인의 개인적인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동네 풍경과 문화가 익숙해서 느끼는 묘미들이 있거든요.
▷이: 단순히 제주 사투리를 습득하기 위해서라면 그냥 제주어 사전을 보는 게 나을 거예요. 한 권을 다 읽고 나면 각 단어의 사전적인 의미보다 제주에서의 삶과 문화가 마음에 남아요. 제주에 관심이 있지만 관광지로만 알고 있는 분들이 한 번쯤 읽어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휴가 때 놀러 오는 낭만적이고 따뜻한 곳이 아니라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이라 하루하루 버티는 것이 녹록지 않은 섬이라는 걸, 시인의 유년 시절 추억을 빌려 조금이나마 알 수 있어요. 그러면서 배우는 소중한 제주어들은 덤입니다. <정리=서귀포시민의책읽기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