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기의 문화광장] 자랑스러운 항쟁의 날에 태어난 딸에게

[김준기의 문화광장] 자랑스러운 항쟁의 날에 태어난 딸에게
  • 입력 : 2023. 04.04(화) 00:00
  • 오소범 기자 sobom@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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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일보] 사랑하는 나의 딸 은교야. 너의 탄생을 기념하는 날, 아빠는 제주도에서 첫 비행기를 타고 광주로 출근하기 전 새벽에 일어나 생일 축하 편지를 쓰고 있단다. 아빠는 지난 주말에 제주도에서 열린 '4·3미술 국제컨퍼런스 : 기억, 저항, 평화'와 '30회 4·3미술제 : 기억의 파수, 경계의 호위' 개막식에 참석했어. 75년 전에 벌어진 역사적 사건을 주제로 30회에 걸쳐 미술로 제사를 지내고 축제를 열어온 '4·3미술'의 의미를 되새기는 공론장이었어. 컨퍼런스에서 발제를 마치고 토론 시간에 아빠는 이런 얘기를 했단다.

"제 딸은 4월 3일에 태어났습니다. 저는 아이의 생일을 맞이하면 어두운 학살을 연상하곤 했습니다만, 제주도에서 일하며 살아본 이후 생각을 바꿨습니다. 제 딸은 슬픈 학살의 날에 태어난 것이 아니라, 자랑스러운 항쟁의 날에 태어났습니다."

아빠는 은교의 생일인 4월 3일을 언제나 슬픈 날로 기억하고 있었단다. 3만명의 제주도민이 학살당한 참혹한 역사이기 때문이지. 하지만 2016년부터 제주도에서 일하기 시작한 이후 4·3을 다시 공부하면서 새로운 역사관을 정립했단다. 제주도민의 10%가 무참하게 살육당한 학살이지만 그 이전에 미군정과 친일경찰의 탄압에 맞선 제주도민들의 반분단 민중항쟁이라는 점을 새삼 각성했기 때문이야. 일제강점기로부터의 해방 이후 '한반도 전역에 걸친 단일 정부수립'을 원했던 국민들의 뜻과 달리 미군정은 한반도 남쪽만의 단독정부를 수립하려고 했던 거야. 이에 반대했던 제주도민들은 민중항쟁을 벌였고 이로 인해 민간인 대량 학살이 벌어진 거지.

은교는 정명(正名)이라는 말 들어봤니? '바른 이름, 정명'. 어떤 일이나 사물에 바른 이름을 붙여야 제 구실을 한다는 뜻이지. 반분단운동인 4·3은 아직 바른 이름을 갖지 못했어. 동학농민혁명, 대구10월항쟁, 부마민주항항쟁, 광주민주화운동 등 수많은 항쟁들이 그 이름에 제 뜻을 담고 있지만 4·3은 아직 제 이름을 찾지 못해 그냥 '제주4·3'이라고만 부르고 있단다. 1948년에 벌어진 4·3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구나. 분단 문제의 해결 없이 제주4·3의 완전한 해결은 어려운 일인 것 같구나. 언제일까? 분단을 극복하고 한국 현대사의 질곡을 걷어내는 그날이.

딸의 생일날 아빠가 너무 무거운 얘기를 했구나. 하지만, 1년에 하루뿐인 생일을 맞아서, 4월 3일이라는 역사적인 날에 담긴 역사적인 의미를 차분하게 생각해보는 것도 뜻깊은 일이라고 생각해. 입시 준비로 바쁜 나날을 보내는 내 딸도 2년 후면 대학생으로서 새 길을 걷고 있겠구나. 그때는 제주와 광주, 부산, 대구, 대전 등 한국 전역에 걸친 우리 근현대사를 찾아 역사탐방을 하면 좋겠어. 다크투어라고 부르기도 하는 역사유훈여행을 함께 하는 날을 기대할게.

- 2023년 4월 3일 새벽에, 멀리 제주도에서 아빠가 <김준기 광주시립미술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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