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일보] 백성들에게 악행을 일삼은 벼슬아치는 구전으로 전해지지만, 바르고 어질게 잘 다스린 관리는 비석을 세워 기린다. 조선시대에 부임한 제주 목사 선정비 중의 하나가 '심현택애민시혜비'이다. 1883년에 부임한 심 목사는 사람이 들어가지 말아야 할 섬에 농사를 지을 수 있도록 처음으로 허가했으며 제주 연안에서 일본 어선들의 어로 행위를 차단함으로써 제주 도민의 안녕을 우선시했다.
사람이 정착하기 전 마라도는 숲이었다. 그러니 당시에도 마라도는 새들의 정거장이면서 번식지였다. 사람이 거주하기 전 1703년에 제작된 탐라순력도 대정강사편에는 섬의 명칭이 마라도(摩羅島)였다. 어떤 연유로 마라도(馬羅島)로 바꿨는지 정확하지 않다. 사람이 들어가자 전쟁이 시작됐다. 숲이 태워지면서 야생동물이 죽고 일부는 섬을 떠나야 했다. 수만 명의 관광객이 찾는 천혜의 섬이 돼서도 인간의 선택으로 한시도 편할 날이 없다.
사람이 거주한 지 140년째가 됐지만 마라도에선 아직도 전쟁이 진행 중이다. 자연생태계는 복잡한 먹이사슬 속에서도 유지되는 게 순리이다. 하지만 인간의 개입과 간섭은 자연평형을 무너뜨리고 제각각 우선순위를 두고 갈등을 빚게 마련이다. 길고양이가 증가하면서 마라도에서 번식하는 뿔쇠오리가 위험에 놓이게 되자 부득이 길고양이가 섬을 떠나게 됐다. 이 과정에서 행정과 동물보호단체 그리고 지역 주민 간에 보여준 최선책과 차선책은 야생동물과 반려동물을 위한 우선권인 동시에 아름다운 평화의 길을 선택한 타산지석으로 남을 것이다.
일본 정부가 후쿠시마 핵발전소 오염수 방류를 강행할 조짐이다. 미세먼지, 플라스틱, 해양쓰레기, 기후위기와 같은 환경 이슈보다 더 심각한 환경 문제이다. 왜적이 쳐들어와도 끄떡없던 섬이 한방에 쓰러질 위기이다. 특정 집단이나 한 국가의 이해 당사자들만이 결정할 사안이 아니다. 자국민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강행한다니 한일 갈등이 전쟁으로 번질 위기에 놓여 있다. 몰래 버리는 쓰레기도 조마조마한데 대놓고 버리겠다니 아연실색할 노릇이다. 바다에 버려진 오염수는 돌고 돌아 해양자원과 수산물에 엄청난 피해를 야기할 것이다. 그야말로 전쟁도 불사할 정도로 생존의 갈림길에 놓여 있다. 어쩔 수 없는 재난으로 받아들여서는 곤란하며 현명한 대처가 필요하다.
이웃 간에 문제는 먼 이웃이 해결해주지 않는다. 상대가 강하게 고집을 부린다고 해서 머뭇거리다가는 더 큰 재앙을 맞는다. 먼 훗날 마라도 해역에서 잠수하지 못하고 허우적대는 뿔쇠오리에게 뭐라고 변명해야 하나. 자연평형도 무너지고 뿔난 국민 마음마저도 불타 없어질지도 모른다. 마라도의 뿔쇠오리와 길고양이를 살려냈듯이 서로 간의 책임성 있는 협상력을 발휘해야 한다. 한일 간의 만남과 설득은 자국민은 물론 이웃나라의 안전을 우선시하는 평화협정이어야 한다. 그래야 비석을 세우지 않더라도 미래 세대들에게 오래오래 기록될 것이다. <김완병 제주민속자연사박물관 학예연구사·이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