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상철의 목요담론] 글씨가 바로 그 사람이다(書如其人)

[양상철의 목요담론] 글씨가 바로 그 사람이다(書如其人)
  • 입력 : 2023. 04.20(목) 00:00
  • 오소범 기자 sobom@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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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일보] 최근 황기환 애국지사 유해 국내 봉안이 보도되면서 안중근 의사 유해봉환 문제가 다시 불거졌다. 안 의사는 글씨도 사랑받지만 최근 뮤지컬 '영웅'도 14년에 걸쳐 300회를 돌파했다고 한다. 또 일전에 국보법 위반으로 복역한 신영복 교수의 글씨체가 국정원 원훈석에 쓰인 게 부적절해 설립 당시의 원훈석으로 교체했다는 기사도 있었다. 잇따른 보도를 접하면서 이참에'글씨가 사람에게 무엇인가'를 알아보겠다.

서예는 필선(筆線)의 예술이다. 오랜 숙련과 서법을 기반으로 주관적 감정을 표출한 본질 그 자체로서의 선(線)이다.

서론에서 서예는 유기체로 비유된다. 신(神)기(氣)골(骨)육(肉)혈(血)로 구성된 생명체로서 무엇보다 정신성이 강조된다. 서예는 또 오래전부터 인간성 회복을 위한 필수교양으로 여기기도 했다. 청(淸)의 유희재(劉熙載)는 "글씨는 그 사람과 같다(書如其人, 서여기인)"고 했다. 이는 글씨에 사상, 관념과 정감, 의취, 성격, 자태와 용모, 취향 등이 드러나므로 서자(書者)의 인격과 다름이 아니라 여겼기 때문이다.

자고로 서예가는 글씨로 예술성을 인정받는다. 다른 한편으로 훌륭한 사람은 예술성을 논외로 하고 글씨가 인격을 대신하기도 한다. 예술성과 인격 둘 다 갖춘 자로서 서예사에 회자되는 대표적 인물이 당(唐)시대 안진경(顔眞卿)이다. 그는 그때까지 유행하던 왕희지의 부드럽고 우아한 서체를 남성적이고 강건한 서체로 흐름을 바꾼 혁신적인 서예가다.

당시 왕조를 뒤흔들었던 안녹산 난의 진압에 공을 세우고, 이후 위험을 알면서도 반란군을 설득하러 갔다가 오히려 살해당한 충신이다. 그의 글씨체는 당(唐)부터 청(淸)에 이르기까지 약 1,000년 동안 중국의 과거장에서 정체로 쓰이기도 했다.

비슷한 예로 우리나라에서도 이순신, 안중근, 한용운 등이 쓴 글씨가 보는 이들에게 애국 충정을 고양시킨다. 글씨만 본다면야 이완용은 조선 후기 서예의 명가에 속한다. 그러나 오늘날 매국노의 아이콘인 그의 글씨를 좋아하는 사람이 없다. 글씨가 서자의 평판에 영향받은 결과인 것이다.

안중근의 경우는 우리 국민 모두가 존경해 추앙한다. 그의 글씨는 수집가들에게 최고가를 경신하고 있다. 안중근 의사의 유작은 뤼순감옥에서 쓴 한문 휘호작들이다. 인류박애 정신과 숭고한 애국애족 정신을 담은 내용들로 유묵 중 26점이 보물 569호로 지정돼 있다.

안중근 의사의 글씨에는 '대한국인 안중군(大韓國人 安重根)'서명과 단지동맹(斷指同盟)으로 무명지가 잘린 왼손바닥이 낙관을 대신해 찍혀있다. 옥중의 절박한 상황과 달리 대한독립군 장군으로서의 의연함, 독립에 대한 굳센 의지가 전달돼 보는 이의 가슴을 울린다.

"글씨가 바로 그 사람이다."<양상철 융합서예술가·문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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