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식의 월요논단] 오사카 직항로 개척 100년의 역사

[박찬식의 월요논단] 오사카 직항로 개척 100년의 역사
  • 입력 : 2023. 05.01(월) 00:00
  • 오소범 기자 sobom@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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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일보] 그제 4월 29일 오사카 이쿠노구 코리아타운은 황금연휴를 맞이해 찾은 젊은이들로 가득 찼다. 한적한 샛길로 접어들자 작지만 아름다운 건물에서는 '오사카 코리아타운 역사자료관' 개관식이 열렸다. 농악대의 길트기 행렬이 상가를 순회하고 많은 교민들과 주변 시민들이 참석해서 뜻깊은 역사관의 출범을 축하했다. 건물 앞에 세운 김시종 시인의 '공생의 비석'이 눈길을 끌었다.

올해는 과거 식민지 시대 제주에서 오사카로 향하는 직항로가 공식 개설된 지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당시 오사카부 공식자료에는 1923년 2월부터 제주도와 오사카를 직항하는 전용기선 항로가 열렸다고 기재돼 있다. 처음 운항했던 배는 제주 향토자본가들이 세운 제우사의 작은 선박이었다. 이어서 오사카에 적을 둔 아마가사키 기선회사의 군대환이 출범했다.

제주-오사카 직항로의 개설은 일본자본에 휘둘린 게 아니라 제주사람들의 일본 진출 의욕과 향토자본의 선도에 따른 결과였다. 1920년대 부산에서 관부선을 타고 오사카로 향하던 제주사람들이 직항로를 개척한 것이다. 1923년 5월 11일 자 조선일보에는 '제주대판항로'라고 명기해 눈길을 끈다. 통상 '관부선'이라고 부르던 사실에 비춰 보면, 제주를 중심에 둔 자주적인 움직임이 눈에 띈다.

첫 군대환은 1925년 9월 태풍을 만나 서귀포와 표선 사이에서 좌초한 뒤 1926년부터 제2군대환으로 대체됐다. 1924년부터는 조선우선주식회사(일본자본)의 함경환과 경성환이 제판항로에 뛰어들었다. 당시 운임은 공무원 월급의 절반에 해당하는 12원 50전으로 매우 비쌌다. 1926년 11월 1일에는 토착자본의 제주도기선회사가 영보환을 취항시켰으나 가격 인하 경쟁에서 이기지 못하고 조선우선에 흡수돼 버렸다.

오사카의 제주인들은 1928년 3월 천왕사에서 제주도민대회를 열어서 군대환과 경성환의 운임 인하를 요구했으나 거부당했다. 결국 1928년 조천 출신 고순흠의 기업동맹이 북해환과 순길환을 출범시켜 자주운항운동을 전개했다. 1930년에는 제주사람들이 동아통항조합을 만들어 교룡환과 복목환을 출범시켰다. "우리들은 우리들의 배로"라는 슬로건을 배에 걸고 자주적으로 운항에 나선 것이다. 아쉽게도 자주운항운동은 군대환, 경성환, 순길환, 복목환 등 여러 선박들 간의 과당 경쟁과 일제의 탄압, 조직 내부의 균열로 1930년대 중반 좌절했다. 1935년 이후에는 군대환만이 홀로 남아 해방 때까지 독점적으로 운항했다.

한때 5만여 명의 제주사람들을 태우고 일본으로 날랐던 제주-오사카 직항로의 개설은 실로 제주역사에서 1823년 출륙금지령 해제 100년이 지난 뒤 이루어진 새로운 전환점이었다. 탐라왕자 아파기가 661년에 나니와 궁전에 갔던 때로부터는 1260여 년이 지난 후 새로운 교류의 장을 열어나간 개척의 역사였다. 일제 강점이라는 식민지 시대 암울한 상황을 뚫고 나간 제주사람들의 불굴의 기질과 문화를 지금 이 시점에서 되새겨 보아야 할 때이다.<박찬식 제주민속자연사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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