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일보] 제주살이 13년 만에 드디어 엄마가 곁으로 와 터를 잡았다. 엄마의 이삿짐을 정리하러 공항으로 향하던 날, 수많은 기억들이 마음을 흔들었다. 멀리 혼자 있는 엄마가 가슴 한 켠 내내 시큰했는데 이제 달려갈 수 있는 거리에 엄마가 있을 거라는 안도감이 가장 컸지만 한편으로는 아버지의 부재와 엄마의 나이 듦이 아프게 실감되기도 했다. 엄마의 짐을 정리하다가 발견한 오랜 사진첩에는 어린 시절의 나와 젊고 아름다웠던 엄마, 그리고 지금은 없는 아버지가 있었다. 사진첩과 함께 엄마의 모든 짐을 제주도로 보내고 마지막으로 엄마가 매일 바라보았을 창밖 풍경을 사진에 담았다.
20세기의 사랑받은 비평가로 손꼽히는 롤랑 바르트는 그의 마지막 저서, '사진에 관한 노트'라는 부제의 '밝은 방(1980)'에서 사진의 본질은 '그것이-존재-했음'이라고 했다. 사진은 찍히는 순간 과거가 되기에 '있음'이 아니라 '있었음'의 증명인 것이다. 바르트는 그 책에서 사진을 보며 느끼는 감정을 설명하며 '스투디움'(studium)과 '푼크툼'(punctum)이라는 두 가지 개념을 제기했다. 스투디움이 문화, 사회, 교육을 바탕으로 느껴지는 보편적이고 길들여진 감정이라면 푼크툼은 개인의 경험과 교차하며 순간적으로 다가오는 강렬한 인상과 자극을 의미한다. 책에서 바르트는 푼크툼을 "찔린 자국이고, 작은 구멍이고, 조그만 얼룩이고, 작게 베인 상처"라 했다. 말하자면 누군가는 무심코 지나치는 사진이 나에게는 과거의 기억을 되살려 마치 "화살처럼" 아프게 심장을 뚫고 흔적을 남기는 것, 그것이 푼크툼인 것이다. 그렇다고 푼크툼이 꼭 마음의 상처를 발견하는 특별한 순간만을 의미하는 건 아닐 것이다.
매일 걷는 길 위에서 우연히 발견한 들꽃, 유독 예쁘게 하늘을 물들인 저녁노을, 낯선 여행지에서 마주한 낯선 풍경, 그리고 친구, 연인, 가족과 함께 한 순간들을 잊지 않기 위해 우리는 습관처럼 사진을 찍는다. 그리고 생각지도 않은 과거의 오늘을 소환해서 보여주는 SNS의 기능은 때때로 현재와 과거가 공존하는 마술적인 순간을 선사하기도 한다. 어쩌면 사진은 곧 사라질 시간, 우리가 그곳에 함께 '있었음'을 증명하는 조금 쓸쓸한 기록이자 그 시간을 잊지 않고 기억하겠다는 다정한 약속일지도 모르겠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지갑 한 켠에 아버지의 사진을 넣었다. 그것은 지금의 부재보다 함께 했었음을 매일 확인하고픈 애틋한 마음에서 비롯됐을 것이다. 쑥스럽다는 핑계로 아버지와 함께 찍은 사진이 많지 않음이 내내 쓰라렸다. 엄마와도 오랜 시간 멀리 떨어져 살아온 탓에 사진이 많이 쌓이지 않았다. 다행히도 이제 지척에서 '엄마'라고 부를 수 있는 시간이, 그리고 함께 있는 순간을 담을 기회가 많아졌다. 그렇게 쌓인 사진은 나만 발견할 수 있는 푼크툼의 순간을 안길 테지만 또한 깊이 사랑했던 우리의 시간을 증명할 것이다. <김연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