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에 도착했을 때가장 먼저 이름 붙인 지형
[한라일보] 제주도는 오름의 왕국이다. 이 좁은 면적에 400여 개의 오름이 있다고 하니 얼마나 많은 것인가. 제주도 토박이만 아니라 짧은 기간의 여행자들에게도 오름을 보지 않는 날은 없을 것이다. 오름이라는 지형은 육지부에서는 볼 수 없는 이색적이면서 신기한 풍광을 만들어 낸다. 숫자만 많은 게 아니다. 위치가 다르고 크기나 모양도 제각각이다. 그뿐만 아니라 지질도 식생도 다양하다. 그러므로 제주도 사람들은 오랜 역사를 통해 이 오름마다 그에 맞는 쓰임을 찾아냈다. 사람이 기대어 사는 오름이 있는가 하면 목축 장소로, 임산물 생산단지로, 그리고 어떤 오름은 공동묘지로 이용했다. 또 하나의 중요한 쓰임일 수 있는 것으로 땅의 표지 기능이다. 영역의 기준, 방위와 거리를 짐작하거나 소통하는데 필요한 기능이었을 것이다.
산굼부리 분화구.
오름이란 말도 제주도에서 쓰는 말이다. 이 오름이라는 일반명사 자체가 제주도에 고유하다. 그렇다고 해서 제주도에서 자체 발생한 건 아니다. 앞에서 오름의 어원과 그 파생어에 대해 설명했다. 한라산이란 지명을 알기 위해서는 꼭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언제나 언어는 사람이 사용하는 것이고 이동하더라도 가지고 다닌다는 걸 전제하고 있다. 이건 중요하다. 태초에 제주도에 온 사람들은 누구며, 어디서 왔는지 알려면 필수적이다. 언어란 기본적으로 어머니에게서 배운다. 그러니 모어 혹은 모국어란 말은 있어도 조국어란 말은 쓰지 않는 것이다. 이런 기본적 사실을 수용할 때만 제주어가 어떻게 형성됐으며, 제주어가 어떤 언어들과 친연관계인지를 알 수 있게 된다. 또한, 어떤 말을 썼던 집단이 먼저 도착했으며, 어떤 말을 쓰는 집단이 나중에 들어왔는지를 아는데도 언어는 중요하다.
글자 뜻으로 오름 이름 해명 힘들어
고대인이 제주도에 도착했을 때 가장 먼저 이름 붙인 지형의 하나가 오름이었을 것이다. 그들은 이 오름에 물은 있는지, 어떤 유용한 자원이 있는지, 사람이 살기에는 적합한지 같은 부분을 먼저 살펴봤을 것이다. 그런 후에 이 오름의 모양은 어떤지를 따졌을 것이다.
산굼부리 전망대.
이같이 생활과의 관계나 형태를 바탕으로 이름을 지었을 것이다. 다행히 이런 이름들은 아직도 많이 남아 있어서 고대인의 고향은 어디인지, 언제 왔는지, 자연관은 어떠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게 한다. 다만, 지금은 그 이름에 담겨있는 뜻이 무엇인지 다 잊어버려 이리저리 뜯어보면서 퍼즐을 맞추는 데 그치고 있을 뿐이다. 아쉬운 점은 바로 이것이다. 노력을 많이 하고 어느 정도 성과가 쌓인 것은 다행한 일이지만, 아직도 글자 속에 들어있는 뜻만을 고집하는 부분도 많다. 여기서는 오름에 이름을 붙인 사람들은 오늘날의 우리가 아니라 고대인들이라는 점을 강조하게 될 것이다.
산굼부리는 산굼부리오름이라고도 한다. 제주시 조천읍 교래리의 해발 400m에 있다. 분화구의 바깥둘레는 2067m이며, 안쪽둘레는 756m, 동서 지름 544m, 남북 지름 450m, 분화구 깊이는 100∼146m의 원뿔형 절벽을 이룬다. 바닥 넓이는 약 8000평이나 된다. 화구의 지름과 깊이는 백록담보다 크다. 제주도의 다른 분화구와 다르게 낮은 평지에 있는 분화구로, 분화구 내에 울창한 숲이 형성돼 있다.
산굼부리 분화구는 국내 유일의 마르(maar) 분화구로 알려져 1979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됐다. 그러나 이후 마르라기보다는 함몰분화구로 재해석됐다. 함몰분화구는 용암 분출 후 지하에 있던 마그마 공급이 중단되거나, 지하 마그마가 다른 곳으로 이동해 생긴 지하의 빈 공동으로 함몰돼 만들어진 분화구다. 함몰돼 형성된 분화구 직경이 2㎞ 이상이면 칼데라(caldera)라고 하며, 이보다 작은 규모로 함몰돼 형성된 분화구를 함몰분화구라고 한다. 이 분화구는 약 7만3000년 전 두 번째 화산활동으로 인해 지금의 형상을 하게 됐다.
'산굼부리'인가 '굼부리산'인가
이 오름은 지면 아래로 펼쳐진 웅장한 분화구와 방위에 따라 특징적으로 형성된 숲으로 신비한 느낌을 준다. 고대인들도 이 지형을 경이롭게 바라봤을 것이다. 누구나 처음 이곳을 보면 지형 자체가 상상을 초월한 데다 그 엄청난 규모에 놀라워할 것이다. 지명이란 처음에는 한두 사람이 자기들이 보고 느낀 바를 기초로 짓게 된다. 이런 이름이 점차 세월이 흐르면서 사회성을 띠게 되고 역사성까지 내포하게 된다. 그러다가 글자로 옮기게 되거나 행정 조직의 뜻이 가미되면서 체계화가 이뤄지는 것이다.
이처럼 제주어에 널리 남아 있는 지명은 처음에 몇 사람에 의해 생성된 것이 그 말을 쓰는 사람들에게 전파돼 사회성을 띠게 되고 널리 퍼지면서 발달한다. 그러나 그 말을 쓰는 사람들이 이동하거나 멸망해버리면 그 이름도 사멸의 길을 걷게 된다. 제주도에도 어디를 가리키는지 도무지 밝힐 수 없는 지명이 많다. 다만 지명이란 이후에 들어오는 또 다른 언어집단이 그대로 이어받거나 다소 변형함으로써 존속되는 경우가 많다. 이런 현상을 지명의 보수성이라 한다.
그렇다면 고대인들은 이곳을 왜 산굼부리라고 이름 지었을까 하는 것이다. 차라리 굼부리산이라고 해야 자연스러운 것 아닌가? 그렇게 되면 산 이름이라는 체계 속에 있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될 텐데 왜 그렇게 하지 않았나. 어쩌면 이렇게 하지 않은 결과 오늘날 우리는 이 이름에 많은 미스터리가 있구나를 느끼게도 된다. 이런 점이야말로 산굼부리라는 지명을 온전히 보존함으로써 당시의 언어에 대한 정보를 하나라도 더 발굴할 수 있게 돼 다행스러운 측면도 있다. 과연 산굼부리는 무슨 뜻인가?
<김찬수 한라산생태문화연구소장(전문가)>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