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멩이-함명춘
순한 삽살개처럼 흐르는 강이 있고
밑도 끝도 없는 투정도 아픔도 다 받아주는 어머니 손바닥 같은 흙길이 있고
비가 오든 눈이 오든 묵언 수행중인 미루나무가 서 있는
풍경이, 마치 한 폭의 그림 같아서 그 그림 끝에
바람에라도 날아가지 말라고 꼭 잊지 않겠다고
찾아갈 때마다 꼬박꼬박 돌멩이를 쌓아놓곤 했는데
어느 날, 영혼이 있다면 영혼까지 철근콘크리트일 고층 건물이 빼곡히 들어와 서 있네
누가 치운 걸까 그 많던 돌멩이
삽화=써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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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는 이렇고 저렇고 해서 한 폭의 그림 같은 풍경으로 우리의 환심을 사던 일은 이제 불가능해진 어느 늙은 영혼을 위한 시로 읽어도 되지 않을까. 그 사이 사이 언어적 영감은 내면에서 콘크리트처럼 굳어 성장하지 못하는 조무래기 시인을 꾸짖곤 했으리라. 아무려나, 존재하지 않는 과거의 시간 속에 화자가 가 있는 것은 자신의 감성을 감싸줄 배경이 없는 오늘을 살아내기 위해서이며 특히 그런 방식으로 미래의 어느 시점에서 또 다른 오늘을 볼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돌멩이는 눌러서 풍경을 억압하지 않고 쌓여서 풍경을 가두지 않으며 인간의 삶을 살리고 탈출시키려 했지만 지금은 없는 존재이다. 그러나 시적 풍경이 그럴싸하다면 돌멩이는 거기서 꼬박꼬박 솟아나올 수 있다. 그것을 믿을 수 있다면. 현실의 풍경을 또 다른 풍경으로 와해시키며.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