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일보] 차가운 사람의 질문은 항시 정답을 요구한다. 원하는 대답을 듣지 못하면 매섭게 회초리를 든다. 벌을 내린다. 그럴수록 정답은 더 멀어진다. 사랑이 멀어지기 때문에 사랑을 먼저 데려다 놓고 나서야 사람은 안심하고 정답을 맞힌다. 흔히 아이들이 그러하듯 어쩌면 인류의 문제도 그런 방식이 아니면 해결되지 않을 것 같다.
인류는 수많은 문제들이 봉착됐을 때마다 세상에다 차가운 정답으로 대응하기도 했지만 생활의 문제를 대할 때는 사랑이 우선이었다. 그래서 가족같이 따뜻한 사람의 질문에는 항시 상대를 정답으로 이끄는 힘이 있다. 웃음과 함께 하는 공감 이후에 깨달음이 터져 나온다. 제주탐나라공화국 강우현 대표를 만나면서 든 생각이다.
필자가 이곳을 찾은 것은 기후위기시대에 대응 방법이 재활용, 혹은 새활용이라 그에 대한 구체적인 쓰임새를 찾고 모범 사례를 보고 싶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처음 이곳에 발을 들였을 때, 30만 권의 헌책들과 70% 이상 재활용품들로 이뤄진 것들이 슬쩍 겉모양만 바꾼 채 새로운 것인 양 폼만 잡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섣부른 필자의 편견과는 달리, 오래도록 그 자리에 뿌리내려 온 인공의 것들이 스스럼없는 자연이 된 모습을 보고 말았다. 그 속에는 '낡은 것의 힘'이 있었다. 낯설지 않아서 편안한, '인류의 새로운 자연' 속에 서 있다는 느낌이 꼭 그러할 것이었다.
"사람들은 대개 못이 박힌 목재를 보면 자신의 안전만 생각해서 '못 쓰는 나무'라면서 버리지만, 못을 잡아 빼면 '쓰는 나무'가 되는 거요. 부정에서 긍정을 뽑아내지 않고 '그냥 그래' 하면 바보 돼요. 긍정을 찾아내면 됩니다. 세상 돌아가는 것이 잘 안되면 우리가 돌아가 보자고. 그럴수록 나의 우주가 나오는 거지. 지금 이 시대는 '어느 것이 더 좋으냐, 잘하느냐' 하는 시대가 아니야. '무엇이 다르냐'의 시대거든."
강 대표의 말은 그의 작은 액자에 담긴 문구인 '아껴 쓰고, 다시 쓰고, 고쳐 쓰고, 마지막에 돈을 쓴다'에서 보이듯이 단순하면서 실용적이었다. 그렇게 새로운 세계를 창출하려는 그 노력은 인류 스스로 걸려 넘어진 대량소비의 문제를 날카로운 질책이 아닌, 다시 스스로 일어나 비우면서 돌아가는 자연순환의 이치에 편승하라는 노자의 지혜를 역설하고 있었다.
사람은 남의 요구에 의한 일보다 자신이 스스로 하는 일을 힘들이지 않고 더 잘 해낼 수 있다. 그 이치는 내가 나를 끊임없이 바꾸기 때문이다. 자신을 변화시킬 수 있는 건 자기 자신밖에 없다면서 '스스로 하찮게 여기지 말라'는 말까지 필자에게 남긴다.
이 말은 인류가 오래도록 '절약이 미덕'인 시대를 거쳐, 자본주의 대량생산경제구조가 낳은 '소비가 미덕'인 시대를 살다가, 기후위기까지 처한 마당에 '새로운 가치'를 찾아 실천할 수 있는 힘을 북돋운다. 기후 재앙의 해결책은 노답이 아니라 나 자신이 스스로 자기(利己)를 버리는 데 있다는 뜻만 같다.<고나해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