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일보]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철학자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주디스 버틀러는 책 '지금은 대체 어떤 세계인가(원제는 'What World Is This?')(창비 펴냄)에서 신종코로나바이러스(이하 코로나)로 혼란에 빠진 이 세계를 분석한다.
상호의존성과 관계성 등 그간 강조해온 윤리학적 주제를 이어가며 현상학의 개념을 도입해 팬데믹의 비극을 진단하고 앞으로 우리가 구축해야 할 세계상을 모색한다.
책은 크게 서문과 4장(▷1장 세계에 대한 감각:셸러와 메를로퐁티 ▷2장 팬데믹 시대의 권력들:생활의 제약에 대한 단상 ▷3장 윤리와 정치로서의 상호 엮임 ▷4장 살아있는 이들에 대한 애도 가능성), 후기로 구성됐다.
버틀러는 세계의 불공정성과 정치권력의 폭력성이 팬데믹을 통해 가시화되었음을 꼬집는 한편 국경과 면역체계를 넘나들며 전파되는 바이러스가 역설적으로 우리가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점을 포착한다.
버틀러는 팬데믹 시대에 우리는 "관계적이고 상호적인 존재"가 되었으며 서로의 생명에 대해 책임감을 가질 수밖에 없게 됐다고 설파한다. 또 생명과 경제의 가치를 저울질하는 경제우선주의적 정책을 음벰베의 개념을 빌려 '죽음의 정치'로 표현하고, "의기양양한 공리주의"라고 문제시한다.
출판사는 "버틀러는 팬데믹의 비극을 '살 만한 삶'에 대한 철학적 성찰의 계기로 전환한다"며 "버틀러 담론의 총동원이라고 할 만한 이번 논의는 차별과 혐오로 갈등을 빚고 있는 우리 사회가 포스트코로나 시대로 나아가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철학적 지침이 되어줄 것"이라고 소개했다.
그리고 "이 책을 통해 버틀러는 전세계를 향해서 팬데믹을 성찰과 전환의 계기로 삼자는 희망의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며 "버틀러의 사유가 우리 사회에서도 코로나가 지나간 자리를 되돌아보고 미래를 설계하는 동력이 되기를 기대한다"고 평했다.
옮긴이는 해제에서 "이제는 한풀 꺾인 팬데믹 관련 도서들의 범람 속에서 이 책이 보여주는 새로운 점은 바로 이 책이 목표로 하는 것이 팬데믹이 초래한 변화들에 대한 단순한 현상 진단이나 섣부른 대응 방안의 제시가 아니라는 점"이라며 "이 책은 오히려 희망과 절망 모두를 가져온 팬데믹의 양가성을 비롯해 팬데믹이 우리에게 무엇을 드러냈는지를, 그리고 팬데믹과 팬데믹이 가져온 변화들이 우리에게 어떤 윤리적인 성찰을 도모하게 하는지를 일러주고 있다"고 말한다. 김응산 옮김. 1만68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