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언어의 갈라파고스 51] 3부 오름-(10)'돗오름'은 '돋오름'의 다른 표기

[제주도, 언어의 갈라파고스 51] 3부 오름-(10)'돗오름'은 '돋오름'의 다른 표기
돗오름, 돼지와 연관은 무리… '높게 도드라진 오름'
  • 입력 : 2023. 08.22(화) 00:00
  • 김채현 기자 hakch@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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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 같은 오름 또는 돌아서 내린 오름은 오해

[한라일보] 돗오름은 해발고 283m다. 1530년(조선 중종 25년)에 편찬한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저악(猪岳)으로 표기한 것이 가장 이른 기록이다. 이후 1653년 '탐라지', 1709년 '탐라지도', 18세기 '제주삼읍도총지도', 1937년 이정연의 '조선환여승람'에 연이어 똑같이 표기했다. 다만 1899년 '제주군읍지'에는 돌봉(乭峯)으로 표기하여 이전 기록과 다르다.

용눈이오름에서 바라본 다랑쉬오름(오른쪽)과 돗오름(왼쪽). 난대아열대산림연구소 김진

지명의 기원에 대해서는 설이 많다. 첫째는 오름의 모양이 돼지처럼 생겼다 하여 돝오름이라 불리던 것이 돗오름이 되었다는 것이다. 제주 방언으로 돼지를 돝이라 부르는 데서 근거한다. 그러면서 이의 뜻을 빌어 한자로는 '저악(猪岳)'으로 표기한다는 것이다. 또 다른 설로는 이 지역에서 도너리오름이라 한다거나 돌봉(乭峯)이라는 표기가 있는 것으로 보아 '돌아서 내린' 오름의 뜻을 갖는다고 하기도 한다. 이 추정은 과거 어느 한때 '돌ᄂᆞ리오름'이라고 불렀을 것이란 데서 유추한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불렀을지 모르지만, 설령 그렇다 해도 '돌ᄂᆞ리오름'의 'ᄂᆞ리'는 '내리'의 고어형이 아니라 '돌오리>돌ᄂᆞ리'의 변음이란 점을 간과한 것이다. 오름이란 '올'에서 기원한다는 점은 이미 밝힌 바 있다. 이런 설들은 돗오름이라는 오늘날의 한글 표기와 저악(猪岳)의 한자 표기 사이에서 오는 괴리에서 출발한다.

제주어에 돼지를 돗이라 한다는 것은 맞다. 그런데 이 '돗'이란 발음은 표기가 아주 다양할 수 있다. 돗을 비롯해서 돋, 돝, 돛 등을 상정할 수 있다. 네 가지나 되는 것인데 이를 뭉뚱그려서 모두 돼지를 지시한다고 단정해버리는 것은 문제다.

돗오름, 인근의 오름에 비해 높다. 난대아열대산림연구소 김진

돋·돗·돛·돝 같은 발음 다른 뜻

우선, 이 네 가지 말 중 돼지를 의미하는 말은 어느 것인가. 고전을 보면 돋, 돗, 돝 등 세 가지가 나온다. 돼지를 지시하는 말로 '돋'을 쓴 사례다. 불교경전인 '능엄경'을 국역, 교열하여 1462년에 간행한 '능엄경언해'가 첫 기록이다. 1446년 훈민정음 반포 16년 이후면서 지금부터 561년 전으로 정말 이른 시기다. 다음으로 1475년 소혜왕후가 부녀자의 훈육을 위해 편찬한 교양서인 '내훈'(선조내사본), 1632년 편찬한 '두시언해 중간본', 1482년 간행한 '남명집언해', 1527년 '훈몽자회', 1576년 편찬한 '신증유합', 1587년 '소학언해'(선조판), 1617년 '동국신속삼강행실도', 1736년 간행한 '여사서언해' 등이다. '돝'으로 쓴 사례도 있다. 1447년 '용비어천가', 1481년 편찬한 '두시언해' 등이다.

마지막으로 '돗'으로 쓴 사례다. 15세기 말경 통역사들이 사용한 한·한대역(韓·漢對譯) 어휘집인 '조선관역어'에 처음 등장한다. 1748년 편찬한 만주어 어휘집인 '동문유해', 1779년 '한청문감', 1802년 '물보', 1824년 '유씨물명고' 등이다.

이런 변화로 볼 때 15세기 초에는 주로 '돋'으로 표기한 것 같다. 이러던 것이 점차 '돋'으로 굳어져 18세기 중반까지 이어졌다. 이후 '돗'으로 쓴 것이 오늘날의 제주어 '돗'과 같은 형태가 되었다. 그러나 국어에서 이 말은 '돼지'로 이어졌으므로 원래의 어근은 '돋'으로 보는 것이 맞다.

문제는 돗오름에 쓰인 '돗'이 과연 돼지를 지시한다고 단정할 수 있는가이다. 같은 발음으로 '돋'을 '돛'의 의미로 쓰기도 했다. 1781~1782년경에 간행되어 사역원에서 사용한 일본어 어휘집인 '왜어유해'에는 돛대를 '돋대'로 표기하여 '돋'을 돛의 의미로 썼다. 또한 '돗'을 배의 돛이라 설명한 자료는 1464년 세조 10년에 간행한 '금강경삼가해', 1482년 '남명집언해', 16세기경 '태평광기언해', 조선 후기에 나온 '아학편' 등이다. 1481년 '두시언해', 1517년 '사성통해', 1527년 '훈몽자회', 1632년 '중간두시언해', 1775년 '역어유해보' 등도 모두 ᄇᆡᆺ돗의 형태로 돗을 썼다. 돛대를 돗대라 표기하여 같은 형태를 쓴 예는 1690년 '역어유해', 조선 후기 고시조 '청구영언', 1748년 '동문유해', 1779년 '한청문감'에 보인다. 돛을 '돗'이라고 한 표기는 이처럼 장기간에 걸쳐 지속했다. 이와 같은 발음이 오늘날 돛으로 쓰이고 있다. 따라서 '돗', '돋'과 같은 단어는 돼지만이 아니라 배의 돛으로도 썼다는 것이다.



'돋'은 돋다·돋구다·솟아 오르다

무심코 흘려 버리기 쉬운 '돗' 계열이 또 있다. '돋다'의 '돋'이다. 해가 솟아오르는 것을 해돋이라 한다. 이런 의미로 쓴 사례는 1447년 '용비어천가', 1447년 '월인천강지곡', 1459년 '월인석보', 1462년 '능엄경언해', 1465년 '원각경언해', 1481년 '초간 두시언해', 1482년 '남명집언해', 1493년 '악학궤범', 1617년 '동국신속삼강행실도', 1632년 '두시언해 중간본' 등에서 볼 수 있다. 1481년 '두시언해 초간본'과 1748년 '동문유해' 등에서는 '돗다'로 나온다.

김찬수 한라산생태문화연구소장(전문가)

오늘날에도 '돋다'라는 뜻의 '돋'은 많이 쓴다. '더 높게 하다'를 '돋구다', 해나 달 같은 것이 '하늘에 솟아오르다'를 '돋다', '낮보다'의 반대어 '돋보다', 싹이 또렷이 '밖으로 나오다'를 '돋아나다', '위로 끌어올리거나 높아지게 하다'를 '돋우다', 도드라지게 나타낸 무늬를 '돋을 무늬'라 한다.

이와 같이 '돗'이라 발음할 수 있는 단어는 (돼지의) 돋, (배의) 돛, (해돋이의) 돋 등이다. 그렇다면 과연 어떤 점에서 돗오름이 돼지와 같다는 것인가? 저악(猪岳)이라는 이름에 돼지 저(猪)가 들어있다고 해서 돼지와 연관된 이름이라고 하는 건 너무 성급한 추정이 아닐까? 이건 그냥 훈음인 '돗'을 나타내고자 동원한 한자일 뿐이다.

오름의 이름이란 주변 상황과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다. 높낮이, 크고 작음 같은 비교 대상이 있게 마련이다. 여러 오름이 주변에 있을 때 사람들은 각 오름의 특징을 이름에 반영할 것이다. 돗오름이란 (높이) 도드라진 오름이라는 의미를 담으려 한 것이다.

김찬수 한라산생태문화연구소장(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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