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일보] "혼자 가면 빨리 가고, 함께 가면 멀리 간다." 이 말은 미국 부통령에서 환경운동가가 된 앨 고어가 강연에서 한 말이다. 요즘 '제주형 행정체제 도입' 논의를 보며 이 격언이 떠오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제주형 행정체제 도입은 오영훈 지사의 공약인 제주형 기초자치단체 도입에서 시작됐다. 공약에 사용된 '기초자치단체'라는 표현이 '행정체제'로 바뀌었는데, 이는 행정체제 개편의 결론을 미리 정해놓을 수 있다는 우려를 감안한 것이다. '현행 행정시 체제를 어떤 형태의 행정체제로 바꿀 것인가'라는 새로운 행정체제 모형은 특정 결론을 정하지 않고 자유롭게, 다양하게, 폭넓게 도민 의견을 수렴해야 한다.
그러나 제주형 행정체제 도입 등을 위한 공론화 추진 연구용역이 지난 1월 30일 시작돼 6개월여가 지난 7월 제주도민들이 학수고대 했던 '제주형 행정체제 모형'이 발표됐으나, 실망이 큰 것이 사실이다.
연구용역진이 발표한 6개의 모형은 시군구 기초자치단체, 시읍면 기초자치단체, 의회구성 기초자치단체, 행정시장 직선제, 행정시장 의무예고제, 읍면동장 직선제 등 이다. 정말 '제주형'이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의 제주의 역사적 전통과 자치적 특성을 반영한 새로운 모형이 제시되지 못한 아쉬움은 논외로 하자. 그러나 제시된 모형들이 대체 어떤 형태인지, 어떤 측면에서 행정의 민주성과 주민참여를 제고하는 효과를 갖는 것인지를 도민들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문제는 특히나 심각하다.
실제로 본 의원이 행정체제 개편 모형에 대한 도민경청회에 참석한 결과, 연구 용역진의 설명은 이 6가지 개편 모형이 어떻게 도출됐는지에 대한 연구 과정에 대한 설명에 치우쳐져 있다. 6개 안의 개념과 정책효과 등에 대해서는 속 시원하게 설명되지 못하고 있어, 실제 참석한 도민들이 답답함을 호소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여기에 더해 큰 문제는 제주도민들은 행정체제 개편 모형안 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음에도 2차 여론조사가 실시되고, 도민참여단의 숙의토론이 추진되는 등 공론화를 위한 연구과정은 정해진 절차대로 이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앞으로 행정구역안 설계모형이 제시되면 도민사회에서 지금보다 더 큰 논란이 야기될 가능성이 많은데, 그저 정해진 절차를 시간 내에 이행해 나가는 것이 바람직한지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답정너' 논란을 떠나 연구용역진에서 제시한 모형에 대해 제주도민들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이 확보돼야 한다. 자료 제공 또한 충실히 이뤄져야 한다.
제주도정은 무엇이 더 중요한지 다시 한번 되돌아봐야 할 것이다. 앨 고어 부통령의 말을 빌려 제주도정에 당부하고 싶은 말은 다음과 같다.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올바르게 가려면 도민과 함께 가야 한다." <하성용 제주자치도의회 의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