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영택의 한라칼럼] 전시회를 거닐다 별난 아리랑을 만나다

[문영택의 한라칼럼] 전시회를 거닐다 별난 아리랑을 만나다
  • 입력 : 2023. 09.19(화) 00:00
  • 오소범 기자 sobom@ihalla.com
  • 글자크기
  • 글자크기
[한라일보] "예술이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미국 거장(도널드 저드)이 한국 거장(침묵의 화가 윤형근)에게 물었더니, 한참 후 "예술은 심심한 거외다"하고 한마디 하더란다. 예술은 자극적인 맛이 아닌, 자연스러운 맛이 우러나는 음식과 같다는 의미일 게다. 필자는 가끔 제주민속자연사박물관에 들려, 그곳에 전시되고 있는 '귤수소조(橘叟小照)'란 초상화 앞에서 멈추곤 한다. 초상화의 주인은 귤수라는 호를 가진 애월읍 고내 출신 문백민이다. 남종화의 대가인 소치 허련의 부자에 의해 1863년 그려진 이 그림은, 도 지정 유형문화재(제33호)로 제주에서 가장 오래된 초상화로 알려져 있다. 1840년 제주에 유배 온 추사 김정희의 제자이기도 한 소치는, 제주에 여러 번 오가면서 성안 중과원(中果園)의 소유자로 알려진 부호 문백민과 인연을 맺었다 한다. '귤수소조'보다 더 앞선 시기에 그려진 초상화가 제주에 없음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이런 느낌도 예술 감상의 맛인가 보다.

며칠 전 한라일보 갤러리에서 '정진' 화가와 조우했다. 고교 졸업 후 처음 만난 그녀는, '아리랑(我理朗)'전을 열고 있는 김순관 화백과 필자의 제자이다. 갤러리를 가득 채운 그림에는 유독 부들이 많았다. 난초와 비슷한 부들은 잎이 바람에 부들부들 떤다고 해 부들이라 불린단다. 부들은 바람에 흔들리지만 제자리를 지키며 물을 정화하는 식물이다. 이러함에 매료돼 화가는 부들을 그의 화폭에 자주 옮긴단다. 화가는 별빛 같은 윤슬과 바람 같은 부들의 만남에서 숨이 멎을 만큼의 아름다움도 본단다. 그러한 심미안이 '너도 빛나고 나도 빛나고 있음을 그대에게 전하고 싶다'는 메시지를 낳았나 보다. 육지로 출가한 그녀가 제주에서 전시회를 가졌던 것은 고향의 맛 때문일 게다.

요사이는 도남 '델몬도 뮤지엄'에서 전시되는 김순관 화백의 '아리랑 이야기'를 들으려 발품을 팔고 있다. 화가는 아리랑 가락에 한자(漢字)라는 색을 입혀 '참된 나를 찾는 즐거움'이란 의미를 그림에 담으려 했나 보다. 2년 전에는 7번째 개인전의 주제어로 '화양연화(花樣年華)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내걸었던 그다. 화가는 주제어 선정에도 깊은 고뇌를 한 듯하다. 70줄에 다가가는 화가는 이른 새벽에 작품을 구상하고 구현한단다. 상념에 잡힌 고되고 고뇌에 찬 시간들을 치유의 시간으로 이끌기 위함일 게다. 전시장 도처에 내걸린 반추상화 그림에는 염화시중의 미소처럼 인생을 달관한 듯 보이는 화폭들이 우리를 맞고 있으니 말이다. 백지에 색을 입히면 그림이 되고 성찰을 입히면 즐거움이 된다? 꽃처럼 동물처럼 보이는 반구상의 추상성은 참된 자아를 찾아가는 자기성찰의 과정으로 그의 예술의 분신일 게다.

화폭에 문외한인 필자도 사제지간의 전시회에서 오래전 기억의 조각들이 그려지듯 연상됐으니 더불어 치유의 시간을 맞았나 보다. 그러함이 그림이 주는 즐거움이고 예술의 존재 이유가 아니런가. <문영택 (사)질토래비 이사장>
  • 글자크기
  • 글자크기
  • 홈
  • 메일
  • 스크랩
  • 프린트
  • 리스트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밴드
기사에 대한 독자 의견 (0 개)
이         름 이   메   일
8403 왼쪽숫자 입력(스팸체크) 비밀번호 삭제시 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