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장' 영상물의 주인공 정인권씨가 우장을 쓰는 시연을 하고 있다. 진선희기자
[한라일보]"문화재로 지정된 것들은 국가나 도에서 예산을 쓰고 보조를 하지만 일상생활의 소소한 것들은 그러질 못해요. 서울에선 그것들을 미래유산으로 잘 관리하고 있죠. 오늘 영상들은 초등학교 교육 등과 연계해서 잘 활용했으면 합니다. 단지 과거의 기억이 아니라 제주의 오늘을 있게 한 역사를 본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문화도시 사업이 끝나면 흔적 없이 사라지지 않도록 시민들의 관심이 필요합니다."
22일 오후 서귀포시와 서귀포시문화도시센터가 서귀포시청 별관 2층에서 진행한 '휴먼라이브러리 상영회'. 전문가 토크에 초청된 강진갑 (사)역사문화콘텐츠연구원장은 이 같은 소감을 밝혔다.
이날 행사는 2021년부터 이어온 '제주노지문화자산' 아카이빙 결과물을 시민들과 공유하는 자리였다. 해당 아카이빙은 '제주 섬 남쪽'에 위치해 제주시와는 또 다른 빛깔의 서귀포 문화를 일궈온 '마을 삼춘'들의 이야기를 영상으로 기록하는 일이었다. '노지문화'에 대한 지식과 오랜 경험을 가진 '사람책' 주인공은 70대 이상 연령대를 중심으로 약 20명에 달했고 이들의 기억은 최근까지 각 10분 분량의 작품 15편으로 살아났다.
이번 상영회에서는 그중 4편을 선보였다. 비를 피할 때 썼던 '우장'(정인권), '미깡'의 변천사를 풀어낸 '감귤 영농 1세대'(고윤자), 잔칫날 등에 돼지고기를 인원에 맞게 분배하던 '도감'(강희수, 고명관), 제주 돌 문화를 지켜온 '돌챙이'(김상홍, 변산일)다. 특이할 것 없었고 심지어 주변에서 무시를 받는 등 힘겨웠던 노동이 '노지문화'로 주목받게 된 현실에 일부 출연자들은 옛일을 떠올리며 눈물을 글썽이는 모습을 보였다. 영상 기록을 계기로 약 60년 만에 우장을 만들었다는 정인권(표선면 토산리)씨는 상영장을 직접 찾아 우장 쓰는 시연을 하는 등 관객들과 만남도 가졌다.
'휴먼라이브러리' 상영회 행사장 입구에 설치된 4편의 상영 작품 홍보물.
상영회가 끝난 뒤 전문가 토크가 진행되고 있다.
상영이 끝난 뒤 마련된 전문가 토크에서 현진숙 제주도무형문화재위원장은 "자연에 순응하고, 때로는 극복하기 위해 애쓰며 그 시대를 살았던 모든 사람들이 주인공이다"라며 "경관만이 아니라 그 속에 살아온 삶을 봐야 제대로 서귀포를 아는 것"이라는 말로 '휴먼라이브러리'의 의미를 전했다.
강진갑 원장은 "서귀포 문화도시에서 말하는 105개 마을의 노지문화를 우리 문화로 끌어올리고, 한국 문화를 다양하고 풍부하게 하는 자원으로 알려 나간다면 이 같은 영상이 더 많은 지지를 받으며 지속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
김아영 EBS 국제다큐영화제 프로그램 팀장은 영화제 진출 가능성을 묻는 사회자의 질문에 "독특한 아이템으로 관심을 가질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개개인마다 사적인 역사가 깊은 분들인데 10분으로는 좀 짧지 않았나라는 생각이 든다. 사람들이 빠져들 수 있게 하는 이야기 전개가 필요해 보인다"고 제언했다.
앞서 지난 7월에는 제주시에서 '휴먼라이브러리' 상영회가 열렸다. 서귀포시는 앞으로 온라인 영화 플랫폼을 통한 시범 상영도 계획하고 있다. 이광준 서귀포시문화도시센터장은 "미래 세대들이 영상들을 보고 서귀포 문화를 탐구할 수 있는 실마리로 삼았으면 한다"며 "많은 응원을 부탁드린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