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일보] '죽음'이란 글자를 읽는 것은 거북한 일이다. '죽음'이라는 낱말을 쓰고 죽은 자의 수까지 기록하는 일은 그보다 더 하다. 글을 쓰는 일은 자신의 몸속 세포 하나하나에 각인하는 일이라 자신도 죽이는 일이기도 하다. 하물며 살상 무기를 만드는 제조업자는 자신이 곧 살상 무기이며, 자기 자신까지도 살상하는 것이나 진배없으니 더없이 참담한 일일 것이다. 한마디로 '인류의 손으로 인류의 피를 묻히는 일'이 무기 제조업자의 일일 테니 말이다.
최근에 개봉된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오펜하이머'에서는 핵폭탄 개발에 성공해 일본과의 전쟁에서 승리로 이끈 미국의 애국자 오펜하이머에게 당시 대통령 트루먼은 핵폭탄보다 더 강력한 수소폭탄을 만들 것을 명한다. 이때 오펜하이머는 자신이 만든 핵폭탄으로 미처 생각지도 못한 수많은 죄 없는 사상자를 냈다는 것에 지극히 후회하면서, '내 손에 피가 묻었습니다'며 거부의 의사를 표명할 때, 트루먼의 오만하면서도 위압적인 한마디는 '사람들은 핵폭탄을 발포하라고 명령한 나를 기억하지, 당신을 기억하지는 않는다'였다. 필자는 이 장면에서 아이러니하게도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링컨'의 명대사인 '노예 해방은 인류의 손에 묻은 피를 닦는 일이오'가 생각났다. 미국 수정헌법 제13조 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동분서주하던 링컨의 모습이 내 머릿속에서 오버랩됐다.
영화는 언뜻 보면 과학기술의 발달이 가져오는 극단적인 어두운 일면을 보이며 과학자의 윤리 강령을 제시하고 있는 것 같으나, 사실은 권력의 윤리 강령이 그보다 더 우선해야 한다는 뜻을 내포한 것이기도 했다. 자유의 여신이 수호하는 나라에서 창의적인 천재 과학자의 자유로운 사상까지도 아무렇지 않게 억압하는 모순과 함께 인간 내면에 감춰진 욕망과 경쟁, 이기심이 어떻게 사회적 약자들을 병들게 하고 죽음으로 내모는지 또한 시사해 주고 있었다.
학문의 자유란 천부 인권만큼이나 중요한 일이다. 그렇지 않으면 인류는 진화하기 어렵다. 아무리 좋은 양약도 쓰임에 따라서 독약이 되기도 한다. 과학기술의 발달이 결국 인류의 문제를 해결하게 될 유일한 지름길이기도 한 이유에서다.
이 영화가 다른 전쟁 영화와 달리 유독 사람들의 관심을 끌게 된 것은 인류에게 불어닥친 기후변화로 인한 불의 재난이 심각한 수준이기도 하거니와, 이로 인한 인도적인 문제와 더불어 자원 고갈로 인한 전쟁의 우려가 깊어진 까닭으로 보인다.
부를 위해 생산 수단의 소유가 주된 문제였던 과거와 달리 지금, 현재 문제의 발단은 '지나친 생산임에도 분배의 불평등'이라는 사회적 모순 때문이다. 요즘에 유능한 정부는 자국의 이익만을 쫓아 신의 손인 과학자들마저 전쟁 수단으로 이용하지만, 자국의 권리마저도 못 지키는 무능한 정부는 현실적인 내부의 문제를 외면하고 외유하면서 퍼주기식 인기 놀이에만 탐하다 국민을 죽음으로 내몬다. 최근 리비아 사태를 보다가 든 생각이다. <고나해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