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일보] 재난은 예고 없이 찾아온다. 그래서 우리는 어떠한 재난 상황이 들이닥치든 인명·재산 등의 피해를 최소한으로 줄이기 위해 수많은 경우의 수를 생각해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한다.
가족, 연인, 친구들과 기분 좋게 문화시설이나 체육시설에 방문했는데 재난이 발생하면 어떻게 해야 할까. 재난별로 특성이 다르고, 시설별로 구조가 다르기에 각 상황에 맞는 매뉴얼대로 관리책임자의 안내에 따라 신속하게 대피해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의 안전을 책임져줄 매뉴얼이 우리 제주도에는 제대로 갖추어져 있을까. 결론을 이야기하자면 안타깝게도 지금 당장 재난이 생기면 속수무책으로 당해버릴 수준이다.
본 의원이 이번 행정사무감사를 준비하면서 도내 공공 문화체육시설 39개소에 대해 재난 대피매뉴얼 준비현황을 확인해 본 결과 대부분 시설에 대피매뉴얼은 있으나 화재로 인한 재난발생만 대비할 수 있는 소방계획서에 의존하는 곳이 많았다. 이는 최근 안타까운 사고가 많았던 '침수', '지진'에는 전혀 적용하기 어려운 매뉴얼로 개선이 시급한 상황이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 부실한 대피매뉴얼도 비장애인 관점에서 작성된 것이었다. 즉 재난이 발생하면 장애인들은 오도가도 못하는 상황이 된다는 것이다. 대피매뉴얼이 이 수준이기에 사실상 장애인 대피를 위한 별도 시설이 있더라도 쓸모없는 역할이 될 수도 있는 현실이다.
장애인은 휠체어를 타고 있고 시각에 어려움이 있을 수도 있으며, 재난에도 경고음을 듣지 못하는 청각 장애 등 다양하다. 이에 더욱 촘촘히 매뉴얼을 마련해야 함에도 대피방법이 일괄적으로 계단을 이용하게끔 제시돼 있다. 휠체어로 이동하는 장애인들은 그야말로 좌절할 수밖에 없는 내용이다.
재난 발생 시 장애인은 비장애인보다 대피가 더 어렵다. 소방청에 따르면 2021년 화재로 죽거나 다친 장애인은 10만명당 9.1명으로, 비장애인의 2.2배였다. 지난해 8월 기록적인 폭우가 우리를 위협할 때 발달장애인 등 재난 취약층이 가장 먼저 희생됐다. 이렇게 장애인 피해사례가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음에도 비장애인 중심으로 계획이 수립됨으로써 체계적인 예방 및 지원 체계가 부실한 것이 우리가 직면한 문제인 것이다.
재난은 기다려 주지 않는다. 제주도는 조속히 전면 실태조사를 진행해 대상별, 시설별 대피매뉴얼을 마련해야 한다. 1차적으로 공공문화체육시설뿐만 아니라 공공기관 대피매뉴얼 점검을 시작으로 시설별로 재난 특성에 맞는 대피매뉴얼을 준비하되 장애인 대피메뉴얼을 신속하게 마련해야 할 것이다.
'재난상황에서 우리의 소중한 목숨과 미래를 지켜줄 수 있는 것은 만반의 태세밖에 없다'라는 것을 꼭 명심해 비장애인, 장애인을 위한 촘촘한 재난대피매뉴얼이 마련될 수 있기를 바란다. <박두화 제주자치도의회 의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