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진 농업유산 제주의 화전(火田)] (3)떠난 사람들, 남겨진 흔적들- ⑪상잣성과 용강·영평동 화전

[잊혀진 농업유산 제주의 화전(火田)] (3)떠난 사람들, 남겨진 흔적들- ⑪상잣성과 용강·영평동 화전
도민·화전민들 애환 상징 잣성 정밀조사·보호방안 시급
  • 입력 : 2023. 11.16(목) 00:00
  • 이윤형 백금탁 기자 yhlee@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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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소장 일대 1㎞ 이상 상잣성 분포
대규모인데다 축조 당시 원형 유지
제주도 조사보고서에도 없어 주목




[한라일보] 제주시 봉개동 절물오름과 샛개월이오름으로 둘러싸인 해발 580~600m 일대. 산림이 우거진 사이로 너른 목장지대가 펼쳐지고 한라산이 지척인 산간지대다. 마치 밀림지대를 방불케 하는 이곳에서 취재팀은 수차례 조사를 통해 기존에 알려지지 않은 조선시대 대규모 상잣성을 확인했다. 길이는 1.2㎞ 정도로 더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높이는 140~170㎝, 너비 140㎝ 안팎으로 파악된다.<본보 11월15일자 5면>

취재팀이 이번에 확인한 상잣성 너머로 목장전이 펼쳐져 있다. 특별취재팀

취재팀이 찾아낸 상잣성은 제주특별자치도가 펴낸 조사보고서나 기존 문헌자료에도 수록되지 않은 것이라는 점에서 관심이 모아진다. 제주도가 2019년 모 연구원에 의뢰하여 조사한 '2019 제주 목마 관련 잣성유적 실태조사(동부지역)' 보고서에도 실려있지 않은 유적이다.

잣성은 조선시대 제주에 설치된 국영 목마장인 10소장의 상하 경계에 따라 돌로 축조한 담장이다. 해발 200~600m 범위에 10소장이 만들어졌다. 하잣성, 상잣성을 먼저 쌓고, 나중에 중잣성(해발 350~400m)을 쌓았다. 하잣성은 해발 200m 내외를 중심으로, 상잣성은 말이 산림지대에 들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 해발 450~600m에 한라산을 빙 둘러가며 쌓았다.

제주에 남겨진 잣성은 한반도 다른 지역에는 없는 독특한 유산이다. 조선 세종대인 15세기 초반부터 한라산 아래 해발 200~600m 사이 너른 평원지대를 구획정리하듯 10개의 목장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 경계를 따라 제주도민을 동원하여 돌로 쌓은 게 잣성이다. 조선시대 설치한 국영목장은 고려 말 몽골의 제주에 축조한 목장을 토대로 지속적으로 확장한 것이다.

상잣성 일부 무너진 구간에 촘촘하게 겹담으로 쌓아올린 사다리꼴 형태의 단면이 잘 드러나 있다. 특별취재팀

이는 화전과도 연관된다. 제주도에서 행해진 본격적인 화전은 고려 말의 목장 설치에서부터 비롯된다.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화전민들은 목장지대에서 화전이 합법화되는 19세기까지 경작과 쫓겨나기를 반복했다.

이번에 상잣성이 확인된 곳은 10소장 가운데 3소장 지역이다. 1899년(광무 3) 5월에 제작된 '제주군읍지 제주지도'를 보면 3소장에는 상잣성 위로 화전동이 나타난다. 현재의 제주시 용강동과 월평동 위쪽 일대다. 옛 용강리와 월평리 주민들이 화전동에서 농사와 목축을 겸했을 것으로 보인다. 상잣성 주변으로는 목장전으로 이용했을 것으로 보이는 너른 목장지대가 있다.

수확이 없어도 화전에 따른 세금은 꼬박꼬박 부과됐다. 화전민들은 과중한 세금에 시달렸다. 이는 19세기 말 잇따른 민란 발생의 주요 원인 가운데 하나가 된다. 이를 뒷받침하는 문헌자료가 있다.

관목이 우거진 사이로 상잣성이 길게 뻗어 있다. 특별취재팀

1899년 봉세관 강봉헌이 화전세 징세 자료로 작성한 '제주삼읍공토조사성책, 주산장신기화전주'(州山場新起火田株)에는 당시 3소장이던 영평(20명/40냥), 월평(65명/130냥), 용강(20명/33냥), 명덕(명도암, 40명/131냥) 등에서 화전세(火粟田)를 징수하였다고 나와 있다. 현재 행정구역상으로 용강동은 제주시 봉개동에, 영평동은 제주시 아라동에 속한다.

이에 대해 진관훈 박사는 "3소장에 있는 화전동은 용강리와 월평리 사람들이 농경지 확장과 농목(농경과 목축)교체 차원에서 소집단으로, 수확기 일시 혹은 유목형태로 화입(방애) 후 화전 농사짓거나 목축(태우리)에 종사하는 해발 600m 이상의 산간마을이었다고 추측된다"고 했다. 영평마을 화전 농업에 대해서도 진 박사는 "제주 4·3 이전까지만 해도 일반농가에서 부업 수준 정도로 남아있었다. 당시만 해도 산야에 일부러 불을 놓는 화입(火入) 관행이 이루어져 왔다"고 했다.

목장전 따라 길게 이어진 상잣성. 특별취재팀

취재팀이 이번에 조사한 상잣성의 존재와 규모, 인근 목장지역과의 지리적 연관 관계 등을 보면 용강리, 영평리 옛 화전민들의 경목교체방식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경목(耕牧)교체방식'은 농경과 목축, 방목을 동시에 하거나 번갈아가며 하는 방식을 말한다. 또 상잣성 축성이 우마를 그 위로 올라가지 못하게 하는 기능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산간에 있는 멧돼지나 사슴, 노루 등이 그 아래로 내려오지 못하게 함으로써 농작물을 망치고 가축에 피해를 주는 불상사를 막는 기능도 있다고 보았다.

잣성은 마정사와 관련된 목축문화유산이자 제주의 정체성을 가장 잘 드러내는 돌문화유산이다. 오랜 시기 행해졌던 화전과 관련된 유산이기도 하다. 길이는 무려 600리로 알려진다. 그 엄청난 대역사를 위해 도민들이 동원돼 오랜 세월 노역에 시달렸다. 구획을 정해 마을마다 일정 구간을 맡아 쌓은 한의 유적이다.

취재팀이 확인한 상잣성 추정 분포도. 특별취재팀

현재 잣성은 각종 개발로 지속적으로 훼손되고 멸실 위협에 놓여있다. 그나마 남아있는 잣성도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는 실정이다. 그럼에도 도문화재 지정 등 보호장치 마련에는 소극적이다. 특히 상잣성은 산림지대에 축조돼서 실태를 파악하기 힘들다.

현재 확인되는 상잣성은 보통 높이는 0.8~1.2m 폭은 0.5~0.7m 정도이고 길이 100m 내외로만 남아있다. 그런데 이번에 조사한 상잣성은 이중, 삼중 겹담으로 견고하게 쌓았으며 높이가 170㎝, 폭은 130㎝에 이를 정도로 두껍고 높으며 견고한 상태를 보여준다. 게다가 거의 원형을 유지한 채 양호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중요성이 크다. 길이 1㎞ 이상되는 상잣성은 드물다는 점에서 희소성과 함께 문화재적 보존 가치가 높다는 지적이다.

진 박사는 "규모나 구조면에서 이번 상잣성은 아주 특별하다"며 "상잣성에 대한 정밀 실태조사와 함께 기능과 역할에 대한 조사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고재원 제주문화유산연구원장도 "각종 개발로 지형 및 식생 파괴가 가속화되고 있는데, 돌 문화 그중에서도 잣성은 더욱 파괴의 정도가 심각하다"며 "현황조사와 보호방안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취재팀이 확인한 상잣성은 그동안 존재조차 몰랐던만큼 정확한 길이와 축조방식, 성격 등 규명해야 할 과제가 수두룩하다. 제주도 차원에서 하루빨리 정밀 실태조사와 함께 문화재 지정 등 보존 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으로 지적된다.<특별취재팀=이윤형 편집국장·백금탁 행정사회부장 /자문=진관훈 박사·오승목 영상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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