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아픈 잭, 눈이 아픈 찰리
쉼터 농장서 만난 여러 동물들
친구는 의미 있는 존재 되는 것
상대 힘들 때 함께 견디는 모습
그림책은 아들과 교감의 매개체
가족들과 함께 읽는 시간 뜻깊어
[한라일보] 마음의 상처를 가진 염소 '잭', 그리고 한쪽 눈이 잘 보이지 않는 상처를 가진 말 '찰리'가 만들어가는 간지럽고 따뜻한 동물 친구들의 이야기. 순수한 그림책 속 동물 친구들을 통해 사람들이 닮고 싶은 진짜 친구 이야기를 사랑스럽게 전해주고 있다. 가족이 함께 읽고 마음을 나눌 수 있는 그림책이다.
<카론 레비스 글, 찰스 산토소 그림, 출판사 우리동네책공장>
▶대담=이수향 서귀포시민의책읽기위원회 위원
▷책읽는 가족=서귀포시에서 직장을 다니는 평범한 엄마 송지영 씨와 초등학교 1학년 정하율 군. 늘 책을 가까이하고 좋아하는 작가의 신간이 나오면 찾아보는 엄마와 아들.
11월 '책 읽는 가족'에 함께한 엄마 송지영 씨와 아들 정하율 군. 서귀포시민의책읽기위원회 제공
▶이수향(이하 이): 서귀포 시민의 책 중 이 책을 고르게 된 계기가 있나요?
▷송지영(이하 엄마) : 일단 표지가 너무 예뻤어요. 표지를 펼쳐보았을 때 앞뒷면이 연결되어 있는 것을 아이가 좋아하는데 이 책은 펼쳐진 표지가 액자에 걸어놓은 그림처럼 너무 예뻤어요. 하율이랑 이 풍경을 같이 보기만 해도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살짝 보니까 하율이가 좋아하는 동물도 나와서 이 책을 선정하게 되었어요.
▶이: '동물 쉼터 농장'에 있는 친구들은 평범하지 않아요. 어떤 점이 다른 것 같나요?
▷정하율(이하 아들): 여기는 다친 친구들을 보호하는 곳이니까 다친 것 같아요. 여기 고양이도 차에 치였는지 다리가 아파서 휠체어를 탔어요. 잭도 뿔 한쪽은 뾰족하고 길고, 한쪽은 뭉툭해요.
▷이: 맞아요. 찰리의 한쪽 눈도 흐릿하대요. 혼자 있는 걸 좋아하는 잭은 처음으로 찰리와 친해져요. 그러다가 찰리는 잭에게 다른 친구들과 인사해 볼 것을 권해요.
▷엄마: 그 말을 듣고 잭이 몸을 부들부들 떨었는데도, 찰리는 계속 다른 친구들과 함께 놀아보자고 했어. 하율아, 왜 그랬을까? 엄마 생각에는 찰리는 눈이 안 보여서 잭이 몸을 떠는 것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야. 봤으면 더 이야기하지 않았을 수도 있었을 텐데….
▷아들: 엄마, 찰리가 "그럼 인사라도 하자. 내가 보기에는…" 다음에 무슨 말을 했을까?
▷엄마: '내가 보기에는 너는 다른 친구들하고도 잘 어울릴 수 있을 것 같아'라고 했을 것 같아. 잭이 눈이 잘 안 보이는 찰리에게 "이쪽이야, 찰리"라고 해줘서 큰 도움이 되었던 것처럼 찰리도 잭에게 도움을 주고 싶었던 것 같아. 잭이 친구 사귀는 걸 힘들어하니까.
▷아들: 그런데 잭은 찰리를 사귀었잖아.
▷엄마: 맞아. 잭은 찰리랑은 어떻게 친해졌을까?
▷아들: 잭이 지켜봤어.
▷엄마: 맞아. 하율이 ㅇㅇ친구랑 줄넘기했을 때 기억나? 같은 반 친구인데 둘 다 1학기까지는 줄넘기를 못 했어요. 그런데 하율이는 방학에 줄넘기를 터득해서 2학기부터는 할 수 있게 되었어요. 그런데 그 친구는 여전히 줄넘기를 하지 못해서 '나는 못 해. 그냥 안 할래.'라고 이야기했었지? 그때 하율이가 친구에게 어떻게 이야기했는지 기억나?
▷아들: 몰라. 잘 기억이 안 나.
▷엄마: 찰리가 앞이 잘 안 보여서 꼬불꼬불 다니고, 제자리를 맴돌아도 잭이 지켜봐 준 것처럼 하율이도 그 친구를 지켜봤어. 그리고 'ㅇㅇ아, 손으로 줄 돌리기만 먼저 연습해 보고 뛰어봐. 두 박자에 한 번씩 뛰어볼래?' 하면서 방법을 알려 주었잖아.
▷아들: 아!
▷엄마: 누군가를 지켜본다는 건 정말 소중한 일이야. 하율이 말처럼 잭이 지켜보고 나서 찰리와 조금 가까워진 것 같아. 잭이 찰리에게 들판 가는 길을 알려주고, "이쪽이야, 찰리"라고 이야기 해주었잖아. 하율이가 친구에게 했던 것처럼.
▶이: 이 책에서 특별히 기억 남는 부분이 있나요?
▷엄마: 헛간에 들어오지 못하는 잭을 위해 찰리가 한 일들이요. 이 책은 어른들이 읽어도 좋은 것 같아요. 사람은 각자 살면서 힘든 기억을 가지고 있잖아요. 그런데 같이 옆에서 있어 주는 지인이나 가족들이 그 기억을 없애 주는 건 아니지만, 기억을 벗어나게 도와줄 수 있어요. 찰리가 헛간에 들어오지 못하는 잭에게 어떻게 하늘이 맑아지는지, 어떻게 새로운 추억이 만들어지는지 알려준 것처럼요. 보통은 그 기억에서 벗어나려고 하고, '잊어야지, 잊어야지' 생각해요. 그럴수록 더 고통스러워지잖아요. 하지만 찰리가 잭의 기억을 사라지게 하는 것이 아니라 좋은 추억을 만들어 주려는 것이 좋았어요. 기꺼이 서로에게 의미 있는 존재가 되는 것. 이것이 가까운 상대가 힘들 때 그 힘듦을 함께 견딜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서로에게 의미 있는 존재로 거듭나는 거죠.
▷아들: 저는 잭이 찰리를 데리고 이쪽저쪽으로 다니다가 나무 그늘 밑에서 쉬는 장면이요. 제가 나무를 좋아해서 그런지 그 장면에서 제 마음도 편안해졌어요.
▶이: 잭은 '친구'라는 말이 신선하고, 달콤한 풀처럼 느껴졌대요. 친구라는 말을 들으면 무엇이 느껴지나요?
▷엄마: 친구는 시원한 바람 같아요. 내가 필요할 때는 땀도 식혀주고, 시원하게 만들어줘요. 하지만 거기서 머물러 있지 않고 지나가잖아요. 친구라는 존재는 나를 구속하지 않지만, 나의 필요한 부분을 채워주는 것 같아요. 저는 그런 모습이 친구에 가깝다고 생각해요. 바람을 보면 집착하지 않아요. 자유로워요. '친구'라는 말을 들으면 맑은 날 산 정상에 올라갔을 때, 땀을 식혀주는 바람이 생각나요.
▷이: 가족이거나 가까운 사이일수록 관계에 집착할 수밖에 없잖아요. 하지만 친구는 지켜봐 주고, 구속하지 않는다는 말이 너무 와닿아요. 하율이는요?
▷아들 : 친구는 구름 같아요. 하늘에 항상 떠 있고 언제든지 볼 수 있으니까. 친구가 보고 싶을 때 하늘을 보면 친구 얼굴이 떠오를 거 같아요.
▷엄마: 하율이 지난주에 있었던 일 기억나? ㅇㅇ이랑 같이 빵집에 있었는데 ㅅㅅ가 전화 와서 놀이터에서 보기로 했잖아. 그런데 그 친구는 우리가 빨리 안 오니까 "4시 10분까지 안 오면 나 화낼 거야"라고 했어. 그거 때문에 ㅇㅇ이는 ㅅㅅ이가 화낼 것 같아서 놀이터 안 간다고 했잖아. 그때 하율이가 뭐라고 했는지 기억나?
▷아들: 아니, 기억 안 나.
▷엄마: 하율이가 "ㅅㅅ이가 화내면 내가 말해줄게"라고 했어. 엄마는 거기서 너희가 진짜 친구라고 느꼈어.
▷이: 하율이가 한 "내가 해줄게"라는 말이 찰리의 행동과 같아 보여요. 잭이 헛간에 못 들어왔잖아요. 그래서 찰리가 잭에게 가서 비 오는 날 함께 있어 준 것처럼 하율이도 ㅅㅅ이에게 그런 친구가 되었네요.
▷엄마: '아이들이 많이 컸구나'를 느꼈어요. '친구'의 의미를 깊이 깨달은 것은 아니지만 마음에서 자연스럽게 우러나오는 행동을 보면, 서로에게 의미 있는 존재가 되어가고 있는 것 같아요.
▶이: 마지막으로 이렇게 가족과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느낀 점은 무엇인가요?
▷아들: 엄마가 책을 함께 읽어줘서 좋았어요. 앉아 있는 것이 조금 힘들었지만 오래오래 읽고 싶은 책을 만나서 좋았어요.
▷엄마: 아이와 책을 통해 경험과 생각을 나누는 시간이 뜻깊었어요. 이번 기회를 통해 집에서도 책을 통해 아이와 교감하는 시간을 많이 만들어 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정리=서귀포시민의책읽기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