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전 일본인 눈에 비친 제주사회는 어땠을까

100년전 일본인 눈에 비친 제주사회는 어땠을까
우당도서관 '1930년 전라남도사정지 제주도 편' 번역 발간
제주도 민란연감·농림수산목축분야 통계 등 이색내용 많아
  • 입력 : 2024. 01.10(수) 16:36
  • 백금탁 기자 haru@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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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일보] 제주도 민란연감, 철도(수압식 궤도), 농림·수산·목축 분야 통계 등 이색적인 내용을 담은 100년 전 당시 일본인이 제주에 대해 기술한 책이 최근 번역 발간되며 눈길을 끈다.

우당도서관은 제주 향토자료 발굴 사업의 일환으로 '1930년 전라남도사정지 제주도 편'(사진)을 번역 발간했다고 10일 밝혔다.

이 책은 일제강점기 전남 목포에서 인쇄업에 종사했던 일본인 소메카와 가쿠타로가 쓴 '전라남도사정지'에 수록된 제주도 편을 발췌한 내용이다. 1915년 도제(島制) 실시 이후, 1930년 전라남도 산하 제주도 13면 행정 체제의 제주사회 현황을 다룬 인문지리지다.

제주기록문화연구소 '하간' 소장인 고영자 박사가 번역했고, 오사카공립대학 문학연구과 이지치 노리코 교수가 감수를 맡았다. 고영자 박사는 "본 번역서가 당대 식민지 정책을 분석하고, 다양한 자료와 문헌 생산의 맥락을 다각적으로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되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이 책에는 제주도 민란연감, 궤도열차, 농림·수산·목축 분야 통계 등 이색적인 내용이 가득하다. 민란과 관련해 윤광종의 난(1813년)을 시작으로 화전민들이 부당한 세금(장화세) 부과를 원망하며 일으킨 강제검의 난(1864년), 방성칠의 난(1898년), 김시범이 주도한 조천만세운동(1919년) 등을 연도별로 담아냈다.

다만 일본인의 관점으로 바라보면서 시각은 왜곡된 부분도 적잖다. 제주인들에 대해 거칠고 사납다고 묘사하고, 민란이 자주 봉기한 데다 조천만세운동을 '무모한 만세 소동'이라고 기술했다. 또한 제주 여성과 관련해 '육지 부녀자는 실내에 틀어박히는 것을 존중하지만 제주도 부녀자는 야외에서 노동하는 것을 최고로 친다'고 썼다.

산업 분야에 대해서는 경작지 면적, 농업호수, 주요 작물(보리·조·고구마·감귤 등), 비료 개량뿐만 아니라 축산업과 면화생산·양잠업, 수산업 등에 대해 다양하게 소개하고 있다.

100년 전인 1923년 당시 도내 가축 사육 현황은 소 3만7910마리, 말 1만3939마리, 돼지 3만8401마리, 닭 4만2031마리, 꿀벌 279군 등이다. 2022년 12월말 기준(제주도 집계) 소 3만8897마리, 돼지 52만9771마리, 말 1만4928마리, 닭 180만8155마리, 양봉 7만1927군 등으로 돼지, 닭, 양봉 사육 규모가 크게 확대됐다.

도로와 철도, 해운, 통신 부분도 다뤘다. 1928년 제주순환궤도주식회사 설립(자본금 50만엔)으로 제1기 노선(제주~협재 구간 20리(약 8㎞ 정도))이 이듬해인 1929년 9월 1일 개통됐으나, 무방비한 궤도에 교통사고로 인명피해가 발생해 회사가 도산, 이후 1931년 운수영업이 폐지 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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