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觀] 희망의 셈법
  • 입력 : 2024. 02.08(목) 00:00  수정 : 2024. 02. 08(목) 11:05
  • 오소범 기자 sobom@ihalla.com
  • 글자크기
  • 글자크기

영화 '나의 올드 오크'

[한라일보] 유튜브 알고리즘은 가끔 내가 알 수 없다고 생각한 미지의 세계로 훌쩍 데려다 놓기도 한다. 찰나의 관심이 동력이 된 이 항해는 때로는 거침없이 무방비 상태의 시청자를 흠뻑 젖게 만든다. 최근 나의 유튜브 시청 목록은 온통 다큐멘터리 프로그램들로 채워져 있다. 당연히 알고리즘의 출발이 나의 요즘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최근 읽고 있는 책들에는 노동과 지방 소멸에 관한 언급들이 자주 있었고 여기에 청년 문제와 빈부 격차는 자연스레 결부될 수밖에 없는 이슈였다. 궁금한 것들이 차곡차곡 더해져 페이지를 넘기다가 보니 자연스레 영상을 찾아보게 되었고 그렇게 여러 창을 열다 보니 한 번도 가 본 적은 없는 남의 집 마당을 통해 구석구석까지 들여다본 기분이 들 정도였다. 나는 도시에 살고 있고 청년이라는 시기를 지났으며 육체 노동자는 아니다. 하지만 월세를 내는 집주인과 분기별로 마찰이 있고 은퇴한 부모님이 살고 계신 지방으로 한 달에 두어 번 향하며 독립영화 자영업자라는 윤택하지 않은 노동 환경에서 서식하고 있다. 모르지만 알 것 같고 남이지만 온전히 타인이라고 하기 힘든 이들의 삶에 관심이 시작되고 커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낯선 타인의 삶이 조금씩 내 안으로 들어오고 있는 것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최근에 본 영화 두 편은 전혀 다른 장르의 영화였지만 흥미롭게도 한 가지 공통적인 주제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무언가를 누군가와 나눈다는 것'이 각각과 모두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가에 대한. 한 편은 아흔 살에 가까운 나이에 이르도록 인간의 권리에 대해 이야기해 온 영국의 거장 켄 로치 감독의 영화 '나의 올드 오크'이고 또 다른 한 편은 '패딩턴' 시리즈를 만든 폴 킹 감독의 영화 '웡카'다. 전자는 다큐멘터리의 질감에 가까울 정도로 리얼리티가 생생한 드라마라면 후자는 로알드 달의 동화를 원작으로 한 알록달록하기 그지없는 뮤지컬 영화다. 두 편 모두에는 삶의 터전을 잃고 꿈을 찾는 가난한 이가 등장한다. 채도와 색상은 각각 다르지만 두 편 모두 확실한 명도로 '해야 할 말'을 관객들에게 전하는 작품들이다. 삶의 곤경에서 희망을 보는 일, 불가능하다고 느끼는 상황에서 가능성의 진동을 느끼는 일이 얼마나 필요하고 중요한지가 두 영화가 전하는 부드럽고 힘찬, 벅차고 사랑스러운 전언이다.

'나의 올드 오크'는 영국북동부의 폐광촌에서 단골들이 주로 찾는 작은 술집 '올드 오크'를 경영하는 이의 마음에서 자라난 친절과 존중이 힘든 세상에 어떤 구심점이 되는지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일자리를 잃은 이들이 사는 공간으로 살 자리를 찾는 이들이 찾아온다. 풍족하지 않은 환경에서 점점 더 지쳐가는 이들의 마음은 버석하게 말라가고 타인들의 등장은 손쉽게 침입으로 간주된다. 닫힌 마음의 문을 여는 일에 필요한 건 오직 한 사람의 손이다. '올드 오크'의 주인인 TJ는 자신의 손을 꺼내 지친 사람들을 위해 쓴다. 손 쓸 수 없이 망가져가는 관계들 위에 부드럽고 힘차게 악수를 건네고 낙담과 분노로 얼룩진 이의 등을 쓰다듬는다.

'웡카'의 주인공 윌리 웡카는 세계 최고의 초콜릿 메이커가 되겠다는 결심으로 도시로 상경한 소년이다. 소년의 결심에 필요한 건 오직 꿈을 포기하지 않는 자신뿐이다. 곤경에 빠지고 위기에 처해도 그의 영롱한 꿈은 바래지 않는다. 자신을 잃지 않고 꿈을 잊지 않아서 가능한 일이다. 소년은 그래서 결국 영웅이 될까, 자신의 꿈을 이루고 성공이라는 신화를 이룩해 낼까. 그런데 '웡카'는 영웅 신화가 아니라 꿈의 비밀을 찾아내는 소년의 모험담인 동시에 비밀의 배합을 밝혀내는 수수께끼의 동화다. 가장 달콤한 순간을 만들어내는 것은 혼자로서는 불가능하다는 것, 작은 조각 하나를 나누어 물었을 때 퍼지는 당도야말로 마법이었다는 것을 소년은 실감하게 된다. 그리고 그 진실과 마주했을 때, 달콤함은 단지 풍미가 아닌 풍경이 된다.

얼마 전 유튜브 알고리즘이 안내한 곳에는 용산 텐트촌의 풍경이 있었다. 살 자리를 잃은 이들이 다리 밑에 텐트를 치고 계절과 세월을 작은 몸으로 맞서고 있었고 그들의 곁에는 가난의 적응도, 포기라는 결말도 원치 않는 타인들의 움직임이 불행을 떠받치고 있었다.

희망을 계산하는 데에 필요한 것은 결국 나눔이었다. 누군가의 삶에서 빠진 커다란 조각들 위로 더해지는 작은 손짓들이 상상할 수 없는 배수의 기적을 만들어낸다는 것. 그 마법 같은 일들을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주어진 조각을 나눠 세상과 나눌 이들이 존재하는 한. <진명현 독립영화 스튜디오 무브먼트 대표(전문가)>
  • 글자크기
  • 글자크기
  • 홈
  • 메일
  • 스크랩
  • 프린트
  • 리스트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밴드
기사에 대한 독자 의견 (0 개)
이         름 이   메   일
4055 왼쪽숫자 입력(스팸체크) 비밀번호 삭제시 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