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아픔 딛고 세운 학교인데…" 철거 추진에 주민 반발

"4·3 아픔 딛고 세운 학교인데…" 철거 추진에 주민 반발
안덕면 옛 상천분교 철거 계획에 "일방적" 항의 목소리
교육청 최근 현장 방문해 주민 의견 수렴 후 계획 '보류'
마을회 "미래세대 위한 자산… 보존 방법 함께 찾았으면"
  • 입력 : 2024. 02.12(월) 16:39  수정 : 2024. 02. 13(화) 14:50
  • 진선희기자 sunny@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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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귀포시 안덕면 옛 상천분교 입구 '배움의 옛터' 표석 너머로 교실이 있던 학교 건물이 보인다. 진선희기자

[한라일보] 서귀포시 안덕면 상천리 옛 상천분교. 제주도교육청에서 '배움의 옛터' 표석 뒤편에 자리한 학교 건물 철거 추진에 마을 주민들이 반발하고 있다. 제주4·3사건으로 1948년 11월 불태워진 마을을 훗날 다시 일으킨 뒤 십시일반으로 학교를 세우는 등 상천리의 역사를 증거하는 곳이어서다.

12일 한라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중산간마을인 상천리에서는 당초 1946년에 학교를 지으려는 움직임이 있었으나 4·3 발발로 중단됐다. 그러다 1954년 6월 마을이 재건되고 주민들이 돌아오면서 학교 설립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지역민들의 재산 기부 등으로 1962년 5월 개교했지만 초반엔 교실 없이 노천 수업을 이어가야 했다. 다행히 같은 해 한·미 협조로 75㎡ 규모의 교실 1동을 신축하며 건물을 갖추게 됐다. 지금도 건물 외벽에 '한미협조' 현판이 남아 있다.

상천분교가 학령인구 감소로 1992년 3월 1일 창천국민학교에 통합되기 전까지 30년 동안 배출한 졸업생은 103명에 이른다. 문 닫은 학교 건물은 마을 비료 창고, 목공교실 장소 등으로 써 왔다.

옛 상천분교 건물. 낡고 오래된 건물이지만 상천리 주민들은 제주4·3으로 불탔던 마을을 재건하면서 설립한 학교의 역사를 말해주는 상징적 건물이라며 철거를 반대하고 있다.

옛 상천분교 건물 외벽에 남아 있는 '한미협조' 현판.

현재 상천분교는 서귀포시와 서귀포시문화도시센터에서 선정한 '서귀포 미래문화자산' 중 하나다. 마을회 측에서 "힘들었던 시절에도 미래세대를 위한 신념과 공동체 정신이 담겨 있는 상천리의 소중한 자산"으로 "마을주민들의 추억과 기억이 사라지지 않고 활성화 되었으면 한다"며 미래문화자산 제안서를 냈고 심사를 거쳐 2022년 대상지로 이름을 올렸다.

앞서 도교육청은 82.64㎡ 면적의 상천분교 교사동에 대한 정밀 안전 진단 결과 D등급이 나왔다며 철거를 예고한 상태였다. 마을에서는 미래문화자산 선정을 계기로 존치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서귀포시, 서귀포시문화도시센터와 논의를 이어갔다. 이 과정에 서귀포시는 문화공유공간 조성 사업 등으로 리모델링은 가능하지만 지속적인 운영비 지원은 어렵다는 입장을 보였다. 이대로 옛 학교 건물이 사라질 위기였으나 지난 8일 도교육청에서 상천리를 방문해 철거에 반대하는 주민들의 의견을 듣고 당분간 계획을 보류하겠다고 밝히면서 마을에서는 한숨 돌린 상황이다.

이에 대해 마을회 관계자는 "일방적으로 학교 건물을 철거하겠다고 마을에 통보해 교육감 면담을 요청하는 등 항의했다. 오죽하면 출입 통제선을 치더라도 건물은 그대로 두라고 했겠나"라면서 "마을 여건상 건물 관리·임대 비용을 부담하긴 힘들다. 마을을 상징하는 건물인 만큼 앞으로 행정에서 관련 법규를 잘 살펴서 보존 방법을 함께 찾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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