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학주의 詩읽는 화요일] (62)한 소식-장석남

[황학주의 詩읽는 화요일] (62)한 소식-장석남
  • 입력 : 2024. 04.09(화) 00:00
  • 오소범 기자 sobom@ihalla.com
  • 글자크기
  • 글자크기
한 소식-장석남




마당 밖에 잠언 한 구가 나무 그림자처럼 옮겨갑니다



풀이 돋아날 겁니다

아무도 보호하지 않겠으나 풀은 웃고

제 주권을 주장하지 않고 풀은 웃고

문 열어놓고 삽니다



그러나 아직 눈밭이고

여자를 업은 한 남자가 두 사람 무게의 깊은

발자국을 남긴 것 말고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풀뿌리들이 소곤거리기 시작했으니

곧 발자국에서

흙이 올라올 겁니다



무거웠던 자국에서

가장 먼저 흙이 올라올 겁니다

삽화=배수연



아직 풀이 돋아나기 전이고 지상은 아직 눈밭일 때 풀을 기억하는 것은 봄을 끌고 와 겨울을 보내는 목자들의 오랜 습성, 따스한 경험 아닌가. 여자를 업은 한 남자가 눈밭에 등장하는 장면이 좋고, 그들은 내가 아는 사람 같다. 달갑지 않더라도, '발자국'의 무게와는 말을 많이 하지 마세요. 곧 흙이 올라올 겁니다. 어느 날 어느 시 풀숲에서 짹짹거리며 새가 옮겨 다니면 잠언 한 구가 맞구나 싶을 테고, 겨울은 스위스였구나 하고 알게 되지. 흙이 넓고 멀리 커튼을 치고 있다 풀을 쨘, 하고 보여주면 한 풍경 하는 초원이 있는 거다. 꼭 문 열어놓고 살자. 울음이 꺼지고 웃는 소리가 안에서나 밖에서 들어올 것이다. 아직은 아니지만 당신은 반드시 내 앞에 나타난다. 또다시 꿈에서라도. <시인>
  • 글자크기
  • 글자크기
  • 홈
  • 메일
  • 스크랩
  • 프린트
  • 리스트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밴드
기사에 대한 독자 의견 (0 개)
이         름 이   메   일
9572 왼쪽숫자 입력(스팸체크) 비밀번호 삭제시 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