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일보] 이탈리아 피렌체는 유럽 여행을 하는 사람이라면 대부분 방문하는 도시이다. 부족한 시간 때문에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보티첼리 등 이탈리아 거장들의 작품이 있는 우피치 미술관과 미켈란젤로의 다비드 조각상이 있는 아카데미아 미술관은 관람하기 힘들지라도, 두오모 광장 주변을 둘러보고 베키오 다리를 건너 미켈란젤로 언덕에서 석양을 바라보며 사진을 찍는 것만으로도 관광객들에는 충분히 매력적이다.
이런 유명 관광지들에 가려져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미술사의 관점에서 봤을 때 피렌체에 가면 꼭 들려야 할 곳 중에 산타 마리아 노벨로 성당이 있다. 르네상스가 막 꽃피던 15세기 초 피렌체에서 활동했고, 이후 많은 화가에게 영향을 미친 마사초가 그린 '성 삼위일체'가 있기 때문이다. '성 삼위일체'의 미술사적 의의는 선원근법으로 그려진 최초의 작품이라는 점이다. 물론 막상 가서 보면 실망할 수도 있다. 선원근법에 익숙해진 오늘날 사람들에게는 그리 놀랄 만한 작품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선원근법으로 그려진 작품을 처음 보는 당시 사람들에게는 벽화가 아니라 실제 공간이라고 여길 정도로 충격적이었다. 아마 실제로 뚫렸다고 확신한 사람들이 손을 작품 속으로 넣어보려고 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하나의 고정된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선원근법을 처음 고안해 낸 사람은 마사초가 아닌 건축가 필리포 브루넬레스키이다. 브루넬레스키와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던 마사초는 그가 설명해 준 선원근법을 회화 작품으로 구현해 내었다. 그리고 화가이자 인문학자인 알베르티는 이를 이론으로 정립했다. '성 삼위일체'가 그려지고 선원근법이 이론으로 정립되자 선원근법의 영향력은 막강했다. 이후 약 500년 동안 화가들은 선원근법이라는 안경을 눈에 끼고 그림을 그렸다. 인상주의에 이르러서야 선원근법의 안경알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안경알의 조각 일부가 떨어져 나갔을 뿐 지금도 선원근법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새로운 예술이 꽃피기 위해서는 이처럼 작가의 재능이 발현될 수 있는 환경이 중요하다. 천재적인 화가 한 사람이 탄생한다고 해서 그의 천재성이 마음껏 펼쳐지거나, 세상을 놀라게 할 새로운 예술이 등장하지는 않는다. 그에게 영감을 줄 사람도 작품에 의미를 부여해 줄 사람도 필요하다. 현재 제주도에서 과거 피렌체처럼 새로운 예술과 예술이론이 생겨나기를 바라는 마음이 욕심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열심히 활동하는 작가가 많기 때문이다. 문제는 작가를 뒷받침할 환경이 갖춰져 있지 않다. 따라서 단순히 작가의 창작활동만을 지원하기보다 작가가 더 많이 경험하고 연구하도록 지원하고,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와 협업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하며, 미술이론 관련 학과가 없는 제주도 현실에서 비평가와 이론가가 성장할 방법은 없는지를 고민해야 한다. 관행에 따르지 않는 편견을 깬 과감한 정책과 지원이 필요하다. <김연주 문화공간 양 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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