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일보] 건축은 동시대의 사회상을 반영하는 표상이다. 국가의 모든 지표가 경제 우선이었던 지난 시대에 건축은 기능과 효율, 그리고 면적에 의해 가치가 결정되었다. 건축이 경제로 치부되던 시대였다. 그러나 1인당 국민 소득이 3만불 시대에 들어서면서, 드디어 건축이 문화로서 지위를 얻는다. 하지만 현실의 갈 길은 멀었다.
건축문화의 향상을 위해 국가적 차원에서 '건축 서비스산업 진흥법'이 마련되고 여러 정책이 추진된다. 그중에서도 단시간에 가시적 효과를 얻는 방법은 공공건축을 통해 사회 전반적인 건축 수준을 견인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공공건축의 기획과 설계, 그리고 운용에까지 외부 전문가들의 도움을 청할 수 있도록 '총괄·공공건축가 제도'가 시행된다. 설계 건축사의 선정 방식도 일종의 제비뽑기인 입찰제도에서 공모방식으로 전환되는 제도적 보완이 이루어진다. 특히 2020년부터 추정 설계 용역비 1억원 이상인 공공건축의 발주는 설계 공모방식을 통해 건축사를 선정하도록 확대되었다.
이에 제주는 전국에서도 선도적으로 제도개선을 했으며, 시행 이후 만 4년이 지난 지금 긍정적인 성과가 도시 곳곳에서 나타난다. 제주시의 경우 제주시민회관, 애월 SOC 복합사업, 삼양 반다비 체육센터 등이 설계 공모방식으로 추진되어 한창 공사 중이며, '주정 공장 수용소 4·3 역사관'의 경우 이미 건축답사의 주요 코스가 되었다. 더불어 서귀포시는 시민들의 숙원사업이었던 '서귀포 문화광장'이 모습을 드러내고, 최근 준공된 '서귀포 시민문화체육 복합센터'와 '삼다 사회복지관'과 어우러져 도시의 문화 코어를 조성함으로써, 서귀포 원도심의 도시 품격을 높이고 있다. 그야말로 공공건축의 혁신이라 할 수 있다.
이렇듯이 제주에서 설계 공모의 형식은 궤도에 올랐으나, 지속적인 효과를 위해서는 내용 면에서 몇 가지 개선의 바람이 있다. 첫째로, 심사위원 위촉의 문제다. 예민한 부분이지만 좀 더 공정하고 건축적 혜안을 지닌 건축가들을 선별해 심사위원 풀을 구성했으면 한다. 이를 위해 '심사위원 평가제도'를 시행하는 것도 방법이다. 객관성이 떨어지거나 심사의 이해도가 부족한 분들을 배제할 수 있는 기준을 마련하기 위해서다. 추천 단체별 형평성이란 명분으로 인해, 심사의 적정성이 훼손되어서는 안 된다. 다른 하나는 설계 공모의 장(場)을 좀 더 개방하자는 제안이다. 현재는 제주 지역 건축사들을 배려해 지역 건축가와 외지의 건축사가 공동 응모하도록 제한을 두고 있는데, 이는 그들만의 리그를 형성함으로써 문화적 동종교배의 위험 요인이 된다. 이미 제주의 건축사들도 충분한 역량이 쌓여 있는데 무엇이 두려운가!
제주의 설계 공모 운영은 전국에서도 최고 수준의 투명성으로 정평이 나 있다. 그래서 더욱 설계공모제도가 건축문화 창달의 최전선에서, 문화적 속성에 유연하게 대처하고 변이하는 살아있는 제도로 발전하기를 기대한다. <양건 건축학박사·가우건축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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