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일보] "선생님, 업어주세요." 입학할 때부터 고학년이 된 지금까지 몇 년간 봐왔던 한 학생은 고령인 선생님과 공부를 하고 난 후 업어달라고 한다. 학습은 느리고, 친구 없이 혼자 놀지만 담임교사의 지도에는 무난하게 따랐던 존재감이 크지 않았던 아이, 그동안 많이 외로웠나 보다.
우리 학교에는 초등학교 교사로 퇴직하고 나서 ‘배움지원선생님’으로 본교에서 수년째 활동해주시는 분이 있다. 수당과 처우를 생각하면 부탁드리기 부끄럽지만, 선생님은 기꺼이 학교에 오신다. 작년까지는 학급에 배치되어 수업 보조를 하기도 했는데, 그때면 최대한 담임교사를 배려하여 눈에 띄지 않고 지도하기 위해 바지를 하나 더 준비한 후 무릎으로 아이들 자리를 이동하며 지도하거나, 저경력 교사가 학생지도의 어려움에 대해 자문을 얻는 모습을 볼 때면 뭔가 가슴이 뭉클해지곤 했다. 올해는 부모의 동의를 통한 일대일 학습지도와 등교를 거부하거나, 화를 참지 못하는 등 정서적 어려움을 겪는 학생에 대한 마음 돌보기, 한국어 소통이 어려운 학생에 대한 생활지도를 하고 있다.
한국어가 미숙한 외국인 학생과 배움지원선생님의 대화를 엿듣는 것은 즐거운 나의 일과 중 하나이다. 뜬금없이 "기다려"라고 했을 뿐인데, 한국어 뗀거 아니냐고 설레발 쳤던 때도 있었고, "이건 무슨 색?", "노란색!", "이건 무슨 색?", "연두색!", "선생님, 마셔요!"라며 물을 달라고 하기도 한다. 소통 부족으로 흥분한 녀석을 진정시키기 위해 아이의 이름을 크게 불렀더니 "왜"라고 큰 목소리로 대응하는 아이의 모습 때문에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한 번씩 "선생님"하고 부르고선 손을 흔들거나, 의자에 거만하게 앉아서 선생님 초상화를 그려주는 자신감 있는 그 표정과 웃음은 쉽게 잊혀지지 않는다.
배움지원선생님을 통해, 학생들에게 학습능력 향상도 중요하지만, 정서적 교감과 맞춤형 생활교육이 더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곤 한다. 조금 서툴지만 기다려주고, 공감받고, 지지를 얻는 경험, 할아버지 같은 연륜있는 어른과 눈마주치고 대화하는 그 경험이 요즘의 아이들에겐 부족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퇴직 후 학교현장으로 돌아와 활동하는 배움지원선생님이 점점 줄어드는 건 안타깝다.
언제부터인가 학급별로 맞춘 옷에 새긴 글자에서 아이들의 마음을 살핀다. 유명해지기 위해 이름을 알리고 싶다는 외국인 학생은 당당하게 자기 이름을, 늘 천진난만한 모습이지만 여건이 충분치 못한 아이는 "존잘남"을, 친구가 매일 놀리고, 점점 친구들이 사라져가는 것 같다며 울며 복지실에 달려왔던 아이는 오히려 자신의 별명을 쓰는 용기를 냈다. 교육복지를 통해 만나는 아이들이 이렇게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모습에서 희망을 찾는다. 그리고, 배움지원선생님과 공부하고 나서 세상 행복한 표정을 짓고 수업에 참여하는 학생 덕분에 보람을 느낀다는 담임교사의 피드백이 참 소중한 오늘이다. <오지선 중문초등학교 교육복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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