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애의 한라칼럼] 용기를 자득(自得)하는 사회

[우정애의 한라칼럼] 용기를 자득(自得)하는 사회
  • 입력 : 2024. 07.23(화) 01:00
  • 송문혁 기자 smhg1218@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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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일보] 최근 어느 신부님의 강의에서 들은 몇 년 전의 이야기다. 웃고 넘길 일만은 아니라는 생각에서 옮겨본다.

한 신부님이 어린이 미사 시간에 강론을 이어가다 질문을 하셨다. "예수님이 사랑하는 12제자가 있었습니다. 그 제자 중에 예수님을 모릅니다라고 한 제자가 있는데 누구일까요?" 하자 한 어린이가 손을 번쩍 들고 "아스카리웃 유다입니다"라고 정확하게 대답했다.

신부님은 "또 한 명은 누구일까요?"라고 묻자 유다만 알고 있던 이 어린이가 고개를 갸우뚱거리다가 "우병우인가? 김기춘인가?"라고 대답해 미사 중인 사람들이 떠나갈듯한 웃음소리로 미사 분위기가 술렁거렸다는 이야기다.

위 이야기를 통해 영향력 있는 주변 사람의 말과 행동은 사회 공동체 안에서 성장과 배움을 반복하는 아이들에게 자연스럽게 스며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Sonstegard, Bitter & Pelonis(2004)의 사회공동체의 역사를 보면, 인간은 다른 동물과 비교해 낮은 시력, 예리하지 못한 발톱, 민감하지 못한 청력을 가짐으로써 약점을 가진 인간끼리 무리를 짓고, 노동을 분업하고, 공동체를 건설하면서 생존을 이어왔다고 한다.

이러한 군집형성을 지지했던 심리적 자세는 소속의 느낌과 상호의존, 보호(양육), 협력이었다. 이러한 것들은 모두 아이들이 살아가고 성장하는데 필요하므로 부모는 새로 탄생한 아이를 적응시켜야 하는 양육의 의무를 갖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가족공동체는 아이들의 소속과 협력을 키우는 첫 장(場)이 되는 것이다.

한편, 문화적, 사회적 요인들이 아이들의 성장 과정에 미치는 영향을 예리하게 지적한 알프레드 아들러(Alfred Adler, 1870~1939)는 양육의 과정에서 키워지는 용기는 협동하고 사회적 관심을 표현해낼 수 있는 능력이라 보고 있다. 성장하는 아이가 자신의 개인적 결함을 사회에 기여하는 방향으로 향상시켜 나아갈 때 스스로 가치 있는 존재임을 자득(自得)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자득이 삶의 자취로 드러나는 것이 행복감이고, 그 강도는 타인과의 협동 정도에 비례한다고 밝히고 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서, 신부님의 질문에 답하는 이 어린이가 성서 안의 유다를 기억하며 청문회장의 정치인 말을 연결 지은 것을 보면 '모릅니다'는 정직하지 못한 것 즉, 거짓인 것으로 인식된 안타까운 모습이다. 각 시대마다 사회적 이슈는 늘 존재하기 마련이지만 청문회 내용이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는 지금, 당연히 아이들에게도 그 파급력은 있을 것이다. 중요한 점은 아이의 주관적인 해석을 비판적 관점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안내하는 부모 또는 사회공동체의 역할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그 이슈를 해석하는 관점이 그 아이의 것이 되고 사회공동체에 협동하는 기본을 배우며 스스로 가치 있는 존재임을 자득(自得)해 용기를 키워내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라 생각되기 때문이다. <우정애 제주한라대학교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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