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문화로 거리를 바꾸자 - 이중섭·솔동산거리 진단과 전망] (8)걷기 좋은 서귀포의 출발점으로

[사람과 문화로 거리를 바꾸자 - 이중섭·솔동산거리 진단과 전망] (8)걷기 좋은 서귀포의 출발점으로
도심 생활권 거리에서 시작하는 일상의 걷기 꿈꾼다면
  • 입력 : 2024. 08.29(목) 06:20
  • 진선희 기자 sunny@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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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걷기는 몸속 간직된 주름”
걸어야 비로소 보이는 골목골목
문화유산·벽화 등 숨겨진 풍경
제주도 3차 보행안전 기본계획안
이중섭거리 보행자전용길 검토
공감대 키워 도시의 경쟁력으로


[한라일보]서귀포칠십리시공원에서 출발한 여정은 새연교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뒤 천지연폭포 주차장 근처를 지나 이중섭거리에서 마무리됐다. 오늘날 여가 활동을 위해 애써 찾아야 하는 해안까지 걸음을 옮긴 다음 방향을 돌려 생활권으로 진입하는 순서였다. 한낮 무더위가 누그러진 오후 7시부터 시작된 행사는 늦은 밤에 끝이 났다. 지난 17일 서귀포시 주최로 열린 '서귀포 달빛 하영걷길'. '빛의 하영'으로 불리는 '서귀포 원도심 야간 도보 여행 코스'에서 진행된 이날 걷기 축제 덕에 어둠이 내려앉은 서귀진지, 옛 서귀포관광극장 앞에 모처럼 발길이 모였다. 종점인 이중섭거리의 한 구간은 상인들의 주도로 차 없는 거리로 변신해 도로 위 힙합 공연이 펼쳐졌다. 그날 이중섭거리에서는 걸어서 봐야 더 즐거운 풍경이 그려지고 있었다.

주말 차 없는 거리에서 열린 '명동로 토토즐'.

'서귀포 달빛 하영걷길' 참가자들이 서귀포칠십리시공원을 지나고 있다.





▶우리가 잊고 지냈던 구불구불 골목길을 따라="도시에서의 걷기는 몸속에 간직된 주름이라고 할 수 있다." 다비드 르 브르통의 산문집 '걷기 예찬'(2002, 현대문학)에 실린 한 대목이다. 뒤이어 이런 글이 나온다. "어떤 도시에 대한 참다운 인식은 오직 육체를 통해서만, 기분 내키는 대로 발길 닿는 대로 거리를 걷는 걸음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굳게 믿는 터이다."

이를 새기며 이중섭거리를 찬찬히 걷다 보면 동서 방향으로 구불구불한 골목에 눈길이 간다. 사람들만 드나들 수 있을 정도로 좁지만 사연을 간직했다. 서귀포관광극장 옆에도 골목이 있다. 이중섭미술관과 연결되는 곳이면서 서귀마을을 관장하는 수호신을 모셨다는 서귀본향당으로 가는 길이다. 서귀본향당은 도심에 있는 민속 문화유산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으며 제주특별자치도 향토유형유산으로 지정됐다. 10년 전쯤에는 서귀포시에서 서귀본향당의 활용도를 키우겠다며 매입했다.

이중섭거리 벽화 골목.

공개 공지의 쓰임새를 잘 살린다면 시민들의 휴식처가 된다.

서귀포관광극장 건너편 태평로 371번길에는 벽화 골목이 자리했다. 언덕길을 오르는 동안 이중섭의 작품 등에서 소재를 따와 벽에 그린 그림들과 마주하게 된다. 기념품을 파는 가게 옆 골목에도 그런 벽화들이 있다. 멈춰야 비로소 보인다.

남북 방향 이중섭거리는 차량들이 시속 30㎞ 이하로 운행해야 하는 도로다. 차량 한 대가 통과할 수 있는 일방통행로이고 제법 가파른 내리막길이라 운전에 주의가 필요하다. 2010년에는 이중섭거리와 잇닿은 명동로까지 포함해 보행우선구역으로 지정됐다.

이중섭거리에서는 그간 보행 환경을 개선하려는 노력들이 이어졌다. 곳곳에 놓인 의자들은 거리 일대에서 가게를 이용하거나 둘러보는 이들이 쉬어 가도록 만들었다. 그것들이 더러 보행의 흐름을 막는다는 지적도 있지만 모니터링을 하며 보완한다면 거리에 필요한 편의 시설로 기능할 수 있다. 건물에 설치된 공개 공지도 쓰임새를 잘 살린다면 시민들의 또 다른 휴식처가 된다.



▶서귀포 원도심 보행자 만족도 평균 웃돌아=이중섭 거주지, 이중섭미술관, 창작스튜디오 등 공공 시설들이 늘어나면서 한때 이중섭거리에서는 방문객들을 위한 차 없는 거리 행사가 잇따랐다. 서귀포시에서 거리 일부의 차량 출입을 막아 정기적으로 문화 행사를 치른 것이다. 올해는 정방동상가번영회가 주관하는 '명동로 토토즐'로 주말 차 없는 거리가 꾸려지고 있다. 실제 서귀포매일올레시장 방면 이중섭거리 입구 조형물에는 서귀포시장 명의로 주말 차 없는 거리를 운영한다는 문구가 새겨졌다. 하지만 별도 이벤트가 없으면 차 없는 거리가 지속되지 못하는 한계를 드러내 왔다.

이중섭미술관으로 갈 수 있는 골목길. 그 길 끝에 제주도 향토유형유산 '서귀본향당'이 자리했다.

이 같은 현실에서 최근 이중섭거리를 보행자전용길로 지정하는 안이 제시됐다. 보행안전법에 근거해 5년마다 수립하는 법정계획인 제주도의 제3차(2024~2028년) 보행 안전 및 편의 증진 기본계획안을 통해서다. 15분 도시 제주 시범 지구를 대상으로 우선순위를 검토한 결과 해당 거리가 제주 지역 보행자전용길 중 하나로 언급됐다.

보행자전용길은 보행 보조용 의자차 등이 통행할 수 있도록 최소한의 유효 보도 폭을 갖춰야 하는 곳이다. 또한 거리의 성격에 맞는 상징이나 색채, 문양 등을 도안해 모든 안내·편의 시설에 통일성 있게 사용하고 특색 있게 발전시켜야 한다.

이번 기본계획안에는 '이중섭거리 및 명동로'란 명칭으로 주중 또는 분기별 차 없는 거리를 운영하자는 제안이 담겼다. 거리의 특성을 반영해 예술문화형·역사문화형 보행자전용길로 조성되면 서귀포매일올레시장, 주변 관광지와 연계해 골목 상권을 활성화할 수 있을 거라고 했다.

제주도는 용역 내용에 바탕해 앞으로 지역 주민 의견 수렴 절차 등을 거치며 보행자전용길 추진 여부를 확정할 계획이다. 사실상 이름만 남아 있는 차 없는 거리가 보행자전용길 지정을 계기로 시민들이 공감대를 이룬다면 장차 '걷는 도시 서귀포'의 동력으로 작동할 수 있지 않을까. 기본계획안 작성을 위해 지난해 7~9월 제주 지역 21개소에서 실시한 보행자 만족도 조사에서 서귀포 원도심(서귀동)이 제주도 전체 평균을 넘어선 점에 주목한다면 말이다. 글·사진=진선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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