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건의 문화광장] 제주 근·현대 건축사 정립을 위한 출발선에 서다

[양건의 문화광장] 제주 근·현대 건축사 정립을 위한 출발선에 서다
  • 입력 : 2024. 12.03(화) 06:30
  • 임지현 기자 hijh529@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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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일보] 최근 제주도립미술관에서 기획한 '제주 근·현대 미술사 조명전: 에콜 드 제주'전은 제주의 근·현대 미술사를 정립하기 위한 시작이라는 측면에서 건축계에도 신선한 자극이 됐다. 제주건축 역사의 정립은 지역적 정체성 모색을 화두로 삼고 있는 건축계의 최우선 과제 중 하나기 때문이다. 이러한 필요성으로 제주특별자치도 건축사회는 2015년 창립 50주년을 기념해, 전통건축에서부터 2000년대까지 제주건축의 흐름을 통사적으로 개괄한 '제주건축역사'를 편찬했다. 더불어 이 연구는 전통건축 시대 이후 근·현대 시기의 건축 아카이브를 구축하고, 건축적 시대상과 시대사조를 규명해 근·현대 건축사를 정립하는 후속 연구과제를 제기했다.

그런데 '제주의 근·현대 건축사 정립'이라는 이 장대한 과업에 누가 쉽게 다가설 수 있겠는가? 다행히 건축 관련 단체에서 여러 의미 있는 움직임이 포착된다. 특히 한국건축가협회 제주건축가회는 아카이브 위원회를 발족해, 일제 강점기 이후 시대별로 제주에서 활동했던 건축가들의 흔적을 추적하고 있다. 축적된 아카이브의 시대별 단면은 곧 시대정신과 시대사조를 도출하는 근거가 되므로, 아카이빙은 역사 정립의 출발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편 근·현대를 조명하는 시간적 범위가 왜 일제 강점기부터인가라는 의문이 든다. 이는 '2016년 제주국제건축포럼'의 부대 행사인 '제주 건축가 12인전' 전시 도록의 서문을 쓴 박길룡(전 국민대 교수)의 세대 구분을 인용한 것이라 밝히고 있다. 그는 일제 강점기에 이름 모를 건축가를 1세대로, 일제 강점기에 건축교육을 받은 건축가들을 2세대로, 5·60년대 육지부에서 대학교육을 받고 귀향한 건축가 그룹을 3세대로 구분하고, 그 후 10년 단위의 세대 구분을 하고 있다. 박 교수의 이러한 시각은 일제 강점기가 가슴 아픈 역사이지만 도시에 누적된 시간 층을 소거할 수 없는 학자적 입장일 것이다.

이렇게 제주건축가회의 아카이빙을 위한 항해는 일제 강점기에서부터 시작됐다. 제주의 원도심은 1915년 조선총독부령으로 도제(島制)가 시작되면서 급격히 일본의 건축으로 치환된다. 그런데 이 건축들의 도면은 파악되지만 건축가는 좀처럼 추적되지 않는다. 단지 1930년대 중반 증축된 자혜 의원의 설계자가 당시 전남도청 회계과 토목 기수였던 '호리우치 히라(堀內平)'으로 확인되고, 식산 은행은 당시 금융 시설의 대부분을 설계했던 '나카무라 요시헤이(中村 與資平)'가 관계됐을 것이라는 추론을 할 뿐이다.

이들의 아카이빙을 통해 1920년대 일본 건축계의 근대건축운동이었던 표현주의적 세제션(secession)의 영향이 유입됐는지, 더 나아가 해방 후 1950년대의 제주건축으로 전개돼 근대건축의 여명을 열었는지 밝히고자 했던 연구계획은 미로에 들어선 듯하다. 하지만 이 미로에서 새로운 길을 하나씩 헤쳐나가는 제주 건축계의 도전은 계속될 것이다. <양건 건축학박사·가우건축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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