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명식 작가가 지난 22일 제주문예회관 제3전시실에서 자신의 개인전 '4·3과 그리움'에 전시된 작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지은기자
[한라일보] 본업은 미용사. 그림을 배운 적도 없다. '헤어아트'의 하나로 머리카락 공예를 하면서 밑그림을 더 잘 그려 보려 붓을 잡은 게 시작이었다. 우연찮게 물감으로 그림을 그렸고, 헤어아트의 재료였던 머리카락을 물감에 섞어 올려 보기도 했다. 올해로 27년 차 미용사라는 오명식(50) 작가는 그렇게 자신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캔버스 위에 하고 싶은 이야기를 풀어 내고 있다.
그가 새롭게 꺼내놓은 이야기는 '제주4·3'이다. 오는 27일까지 제주문예회관 제3전시실에선 그의 두 번째 개인전 '4·3과 그리움'이 열리고 있다. 그 제목처럼 제주4·3의 아픔을 조명하며 마음 깊은 곳의 그리움을 부르고 있다.
사실 나이 50이 되기 전까지만 해도 그에게 4·3은 '오래전에 벌어졌던 일', 딱 그 정도였다. 큰 의미를 두지 않고 넘겨버렸던 이야기이기도 했다. 그런데 부모를 모두 떠나보내고서야 아픔을 직시하게 됐다. 4·3 당시 아버지(외할아버지)를 억울하게 떠나보냈던 그의 어머니는 돌아가시기 전까지도 외할아버지에 관한 얘기를 하지 않았다. 명식 씨는 "그 아픔을 가슴에 묻고 가셨다"고 말했다.
그의 고향은 4·3 당시 피해가 가장 컸던 곳 중에 하나인 중산간 마을 서귀포 표선면 가시리다. 당시 '불바다'가 됐었던 가시리에 대한 증언은 4·3에 대해 더 알아보게 했다. 마을 주민 30~40명을 직접 만나 피해 상황을 들었고,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4·3을 주제로 작업하기 시작했다. "가시리는 제주도 4·3의 축소판과 같다"며 그날의 처참했던 실상을 알리고 표현하는 것이 "내가 해야 할 일이란 생각이 들었다"고 그가 말했다.

오명식 작
전시에는 '다랭이 모루', '소녀', '버들못', '한모살' 등 4·3의 아픔을 담은 작품 26점이 걸렸다. 아크릴 물감과 머리카락, 제주 화산석 등으로 작업한 작품이다. 그에게 머리카락은 단순한 '재료', 그 이상이다. 4·3 당시 희생된 영혼을 위한 애도와 위로의 매개물이나 다름없다. 실제 4·3 희생자 유가족의 머리카락을 사용한 것도 그래서다.
이번 전시에선 "캔버스를 직접 만드는 것이 작품의 시작"이라는 그만의 하나뿐인 캔버스도 만나볼 수 있다. 그의 작품 '부모 가슴'은 얼핏 비어 있는 백색의 캔버스 같지만, 빙그르르 돌아갈 때 검붉은 속내를 내비친다. 그는 캔버스가 회전할 때 나는 소리를 "부모의 울림일 수도 있고, 쓰라린 마음일 수도 있다"며 "말 못하는 심장, 타들어가는 부모의 심장을 표현하려 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전시 기간 내내 오전 10시·11시, 낮 12시, 오후 2시·3시·5시마다 '작가가 들려주는 도슨트'로 관람객을 맞이한다. 관람 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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