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상철의 목요담론] 제주성 여장·미석 발견과 원형 복원의 과제

[양상철의 목요담론] 제주성 여장·미석 발견과 원형 복원의 과제
  • 입력 : 2026. 04.02(목) 01:00
  • 양상철 hl@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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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일보] 최근 제주시 이도동 제주성지 석축 복구 현장에서 그동안 자취를 감췄던 여장(女墻)과 미석(眉石)이 모습을 드러냈다. 오랜 시간 매몰돼 있던 성곽의 원형 일부가 현재의 시간 위로 되돌아온 것이다. 일제의 도시개발로 끊겼던 제주읍성의 조형체계와 축조기법이 이번 발견을 통해 비로소 역사의 맥을 잇게 됐다.

여장이 성벽 위의 방어시설이라면, 미석은 성벽 몸체와 여장 사이에서 눈썹처럼 돌출된 구조물이다. 미석은 성벽 내부로 빗물이 스며드는 것을 방지하는 기능적 장치인 동시에, 수평의 선을 통해 성곽의 조형적 완결성을 부여하는 요소다.

현무암의 질감 위에 드리운 미석의 선은 구조적 안정과 미적 비례가 맞물리는 지점을 명확히 보여준다. 결국 미석은 성곽건축이 스스로를 완결 짓는 마지막 호흡이자 조형적 마침표라 할 수 있다.

이번 발견이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시사점은 기존 복원 성곽들에서 미처 다 채우지 못했던 세밀한 구조들을 재확인할 기회를 얻었다는 점이다.

그동안의 복원은 제한된 사료 속에서 최선을 다해 재현돼왔으나, 이번에 실물로 드러난 미석의 배수 기능이나 여장의 실전적 규모는 기존 복원물들이 지닌 조형적 아쉬움을 보완하고, 제주성곽 특유의 '배수 과학'과 '방어 미학'을 새롭게 정립할 수 있는 소중한 기준점이 된다.

진정한 의미의 복원은 과거의 형태를 단순히 흉내 내는 것이 아니라, 축조 당시의 구조적 메커니즘과 조형적 층위를 온전하게 회복하는 작업이다. 이제 속도보다 정교한 성찰의 태도가 필요하다. 드러난 구간에 대한 정밀 실측을 바탕으로, 기존 복원 구간에서 반영하지 못했던 구조적 특징들을 하나하나 대조하며 보완해 나가야 한다. 특히 미석의 돌출 각도와 여장의 결합 방식은 성벽의 영구적 보존을 결정짓는 핵심 기법임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아울러 제주 특유의 거친 현무암이 지형의 곡선과 어떻게 유기적으로 맞물리며 구조적 강성을 확보했는지 그 공법적 원형을 세밀하게 파악해야 한다. 이는 단순한 석축의 물리적 보수를 넘어, 발굴된 실체적 단초(端初)를 근거로 기복원 구간의 역사적 진정성을 더욱 공고히 하는 과정이 돼야하기 때문이다.

전통은 보존될 때보다 그 원형이 다시 드러날 때 더 선명한 가치를 지닌다. 이번 여장과 미석의 발견은 제주 역사 인식의 회복이다. 이 선명한 궤적은 제주가 스스로를 기억하는 방식이 어디에서 시작돼야 하는지를 명확히 짚어준다. 이제 남은 일은 명료하다. 발견된 원형의 선을 훼손하지 않고, 그 실증적 근거를 바탕으로 기존 복원의 맥락을 더욱 풍성하게 바로잡는 일이다. 제주 성곽의 실체가 건네는 이 준엄한 부름에 행정과 학계가 책임 있게 답해야 할 차례다. <양상철 융합서예술가·문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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