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 와카야마현에 위치한 삼단벽. 아름다운 절경으로 유명하지만 매년 10여 명이 이곳에서 목숨을 끊는 등 아픔이 깃든 장소이기도 하다. 특별취재팀.
[한라일보] 높이 약 50m, 길이 약 2㎞의 절경을 자랑하는 일본 와카야마현의 산단베키(삼단벽). 지난 7월 7일 찾은 삼단벽에는 갓난 아이를 안은 부부부터 손을 맞잡은 연인들까지 관광객들로 북적였다. 이들은 한여름의 뜨거운 햇볕에도 대자연을 배경으로 사진 촬영에 여념이 없었다.
삼단벽은 2016년 NPO(비영리단체)법인 지역활성화지원센터가 '연인의 성지'로 지정한 관광명소다. 이름에 걸맞게 사랑을 맹세하는 하트 모양의 자물쇠 조형물과 소중한 사람에게 마음을 전하는 분홍색 우체통이 방문자들을 반겼다.
l 매년 10여 명이 목숨을 끊는 삼단벽
절벽을 감상하는 산책로 뒤편에 사뭇 다른 분위기의 비석이 눈에 띠었다. '투신자살자·해난사망자 공양탑'. 그 아래로는 꽃이 놓인 화병과 액체가 담긴 유리컵, 작은 향로가 마련돼 있었다.
삼단벽은 매년 10여 명의 자살자가 발생하는 아픔이 깃든 곳이다. 이곳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들이 늘어나자 시라하마 침례교회의 에미 타로 목사는 1979년 '생명의 전화'를 설치하고 자살 위험에 놓인 사람들을 구조하기 시작했다.
교회는 현재 '시라하마 구조 네트워크(이하 네트워크)'라는 NPO법인으로서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1999년 후임으로 후지야부 요이치 목사가 부임했고, 현재까지 네트워크 이사장을 맡으며 활동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일본 와카야마현 삼단벽 인근에 있는 투신자살자·해난사망자 공양탑. 특별취재팀.

시라하마 구조 네트워크가 설치한 삼단벽 생명의 전화. 특별취재팀
취재진이 찾은 삼단벽 생명의 전화 부스 옆 안내판에는 "당신은 귀하고 소중한 존재입니다. 중대한 결정을 내리기 전에 꼭 한 번 상담해 주세요"라며 네트워크의 연락처가 기재돼 있다. 삼단벽 생명의 전화에서 네트워크로 걸려오는 전화는 연간 약 40건이다. 삼단벽 외에도 네트워크로 걸려온 전화 상담은 연간 1800~1900건에 이른다.
이곳에서는 경찰과 행정, 네트워크 봉사자 등이 상시 순찰을 실시하고 있으며, 시라하마경찰서로 바로 연결되는 전화기가 설치된 작은 컨테이너 공간도 마련돼 있다.
l 공동생활을 통해 자립을 꿈꾸다
구조로 시작된 네트워크의 활동은 자립 지원으로 이어졌다. 후지야부 이사장은 구조 현장에서 돌아갈 곳이 없다고 말하는 자살시도자들을 마주하며 이들을 위해 직접 '머물 곳'을 꾸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된 공동생활을 통해 네트워크가 보호한 이들은 현재까지 1800명이 넘는다.
공동생활 공간은 10~20명의 이용자가 함께 지낸다. 평균 거주 기간은 약 2~3년. 자립을 위해선 최소 1년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후지야부 이사장은 설명했다. 네트워크는 삼단벽에서 구조된 자살시도자들과 경찰·행정 등에서 요청한 이들을 보호한다.
이곳에서 이용자들은 규칙적인 생활과 책임의 수행을 연습한다. 새벽 6시 전에 기상한 뒤 조식 시간을 갖고, 각자 업무에 배치된다. 업무는 농업과 조경, 도시락 사업, 요양시설 관리 등 다양하다. 몸이 불편하거나 노동이 어려운 사람이라도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배정한다. 점심·저녁 식사 준비와 설거지까지 모두 이용자들이 직접 참여한다.
자립을 위한 직업훈련과 경제적 기반 마련도 돕는다. 네트워크는 2009년 도시락·반찬 가게인 '마치나카 키친'을 열고 자살시도자들을 대상으로 직업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이용자가 변제해야 할 빚이 있다면 상담을 통해 자금 계획을 짜고, 단체 측에서 용돈을 지급하는 등 적극적으로 관리한다.

시라하마 구조 네트워크가 운영 중인 도시락·반찬 가게 ‘마치나카 키친’. 자살시도자들이 이곳에서 직업훈련을 받는다. 특별취재팀
l 미래세대가 자살을 선택하지 않도록
네트워크가 주력하는 또 다른 분야는 아동과 청소년에 대한 교육이다.
후지야부 이사장은 "구조·보호한 사람들을 관찰한 결과 유아기부터 고교생 시기에 가진 문제가 성인이 되어 표출되는 경우가 많았다"며 "이를 예방하고 아이들이 살아가는 힘을 기르기 위해서 성장기에 대한 교육과 지원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고 강조했다.
네트워크가 운영하는 아동가정지원센터에는 사회복지와 심리사, 정신보건복지사 등 3명의 전문인력이 상주한다. 아동과 부모, 선생님을 대상으로 연간 2500건 내외의 상담이 이뤄진다. 또 아동 방과후 돌봄사업도 진행 중이다.
일본사회에서 학력이 사회진출의 향방에 큰 영향을 주는 만큼 학교를 다니지 않는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한 통신제 고등학교도 운영된다.
후지야부 이사장은 "자살예방활동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한 개인이 갖는 좋은 인간관계"라며 "평소에 서로의 힘든 부분을 살피고 돌보며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혼자서만 고민하면 출구가 보이지 않을 수 있지만 신뢰할 수 있는 주변인 또는 가까운 상담소를 찾는다면 생각지도 못한 출구가 보일 수도 있다"며 "용기를 갖고 도움을 요청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특별취재팀=박소정·양유리·강희만기자

후지야부 요이치 시라하마 구조 네트워크 이사장이 지난 7월 8일 본보와 화상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특별취재팀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정신건강위기상담전화 ☎ 1577-0199, 자살 예방 상담 전화 ☎ 109 또는 자살예방 SNS상담 '마들랜'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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