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의 역사현장'일제전적지를 가다](85)

['고난의 역사현장'일제전적지를 가다](85)
[제주국제공항 유해발굴의 의미와 과제]
공권력 의한 집단 학살·암매장 '사실로'
  • 입력 : 2007. 11.15(목) 00:00
  • /이윤형기자 yhlee@halla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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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국제공항에서 발굴된 유해들. 수십여 구가 서로 뒤엉켜있어 당시의 참혹했던 상황을 생생히 보여주고 있다. /사진=이승철기자 sclee@hallailbo.co.kr

'최대 4·3 학살터' 실체 드러나…유해발굴 기한연장·확대 필요

제주국제공항(옛 정뜨르비행장)에서 약 60년 전 국가 공권력에 의해 학살 암매장된 시신 수십여 구가 발굴된 것은 충격 그 자체다. 수백여 명의 민간인이 학살 암매장 됐다는 그간의 설이 사실로 드러난 것이다. 14일 공개된 현장은 그야말로 차마 눈뜨고는 못볼 정도로 처참했다.

# 무엇이 발굴됐나

지난 8월부터 발굴을 통해 이곳에서는 완전유해 36구와 부분유해 7백37점, 탄두 탄피 신발 단추 도장 안경 담배파이프 등 유류품 75점이 확인됐다. 유해와 유류품은 길이 32.4m, 너비 1.2~1.5m, 깊이 0.9~1.2m의 구덩이에서 발굴됐다. 학살암매장 구덩이인 것이다.

유류품 가운데는 희생자 신원 확인에 결정적 단서가 되는 도장 2개가 발굴돼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

한자로 '희전'(熙銓)과 '양봉석'(梁奉錫)이 새겨진 목도장을 통해 4·3유해발굴단은 희생자가 당시 서귀면 호근리 출신 대정국민학교 교사였던 김희전, 남원면 의귀리 출신으로 의귀국민학교 교사였던 19세의 양봉석씨로 확인됐다.

이날 설명회 현장에는 김희전씨의 조카인 김관수씨(44·서귀포시 호근동)와 양봉석씨의 동생인 양봉천씨(60·남원읍 의귀리)가 참석, 유해발굴 모습을 지켜보며 눈물을 글썽였다.

이와함께 대정중학교 문양과 동일한 모양의 교복단추도 발견됐다.

▲제주국제공항 유해발굴 현장에서 발굴팀이 현장설명을 하고 있다.

# 어떤 사람들이 희생됐나

희생자들은 제주4·3으로 인해 제주도 전역에 광풍이 몰아치던 시기인 1949년 10월2일에 있었던 소위 군법재판 사형수 2백49명과 1950년 한국전쟁 발발 직후 제주시와 서귀포지역 예비검속자 5백여 명이 트럭 10대에 실려 이곳으로 끌려와 집단학살이 이뤄졌다는 증언으로 미뤄 이들의 일부로 추정되고 있다. 이들은 모두 학생과 교사 주민 등 민간인들로 정당한 사법절차도 없이 무차별적으로 희생됐다.

발굴에서 출토된 도장과 교복 등을 통해서도 당시 희생자가 교사 및 학생과 민간인이었음이 입증된다. 이날 발굴현장에서 공개된 유해들은 바닥에서부터 층을 이룬 채 몇 겹으로 뒤엉켜 있었다. 수차례에 걸쳐 집단학살 암매장이 이뤄졌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 학살규모 밝혀질까

정뜨르비행장을 비롯 제주4·3시기 군인과 경찰 등 공권력에 의해 불법자행된 집단학살은 소위 '한국판 킬링필드'(Killing-Field)라 불리기도 한다. 지금까지 무고한 주민들이 얼마나 학살됐는지는 정확히 밝혀지지 않고 있다. 하지만 4·3관계자나 당시 상황에 대한 주민들의 증언을 종합하면 정뜨르비행장에서는 8백명 안팎이 학살 암매장된 것으로 추정된다. 4·3당시 최대 학살터로 알려지던 곳이다.

그렇지만 발굴현장은 심하게 교란·훼손돼 희생자 규모를 파악하기란 어려운 상황이다. 이에따라 발굴기한 연장과 추가확대발굴을 통한 사건의 진상규명이 요구되고 있다.

▲약 60여년만에 드러난 희생자 유해의 머리부분.

# 유해발굴의 의의

이번 학살현장 발굴은 4·3과 한국전쟁기 무차별적으로 끌려가 영문도 모른채 살해당해 암매장된 사건의 진상을 규명해줄 중요한 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발굴현장에서는 탄두와 탄피 등이 무더기로 나와 당시 집단학살 암매장됐음을 보여주고 있다.

박근태 발굴팀장(탐라매장문화재연구원)도 암매장 구덩이에서 나오는 탄두나 탄피 또는 유해상태로 볼때 희생자들이 구덩이에서 학살됐을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로 볼 때 집단 유해발굴은 당시 자행된 '홀로코스트(holocaust)' 또는 '제노사이드(genocide)'라 불리는 국가공권력에 의해 저질러진 학살의 실체를 보여주고 있다.

민간인 집단학살이 이뤄진 정뜨르비행장은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군이 제주도민을 동원해서 만든 군사비행장이다. 일본토 사수를 위해 만든 군사비행장이 4·3과 한국전쟁기 민간인 최대 학살터로 비극의 땅이 된 것이다.

이번 제주국제공항 발굴은 정부가 4·3사건에 대해 공식 사과하고 이의 연장선상에서 이뤄졌다는 점에서 진상규명 과정의 새로운 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4·3과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 관련 유해발굴사업의 시금석이 될 전망이다.

#유족들의 반응 및 과제

▲양봉천씨

이날 양봉석씨의 동생인 봉천씨는 "유해가 확인됐다는 소식에 긴가민가 했다"며 "그동안 백방으로 형님의 사망장소와 시기 등을 수소문하러 다녔었다"고 눈물을 훔쳤다.

또 김희전씨의 조카인 관수씨는 "그동안 송악산 섯알오름에서 희생됐던 것으로 알고 있었다"며 백부의 유해가 확인된 사실이 믿기지 않는 듯 침통해 했다.

이처럼 유해가 집단발굴되면서 현장보존 및 복원, 유해처리 문제, 발굴기한 연장과 추가확장 문제 등이 시급한 현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발굴팀이나 고고역사학계에서는 유해가 집단으로 발굴된 현장을 전사하고, 유해는 복제(레프리카)해서 4·3의 생생한 역사자료료 활용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제주4·3연구소를 비롯 유족들은 이를 위해 관련당국의 적극적인 관심과 지원이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또한 정확한 희생자 규모와 진상규명을 위해서는 이달말까지로 돼 있는 발굴기한의 연장과 함께 확대발굴에 대한 전향적인 검토가 있어야 할 것으로 지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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