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代를잇는사람들](11)한국무용가 모녀 김희숙·고서영씨

[代를잇는사람들](11)한국무용가 모녀 김희숙·고서영씨
"제주춤의 매력 끝이 없죠"
  • 입력 : 2008. 04.26(토) 00:00
  • 이현숙 기자 hslee@halla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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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춤'을 대표하는 무용가 김희숙씨(앞)와 큰 딸 고서영씨가 다정하게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강희만기자 hmkang@hallailbo.co.kr

발레리나 꿈꾸다 한국무용 전공 결심
"모녀 이전에 도움 주고 받는 선후배죠"

기어다니기 시작할 때부터 어머니의 연습실 마루바닥은 딸의 놀이터였다. 자연스럽게 춤을 배우기 시작했고 철이 들면서 발레리나를 꿈꾸게 됐다. 하지만 고교 1학년때 국립극장 무대에 올려진 국수호 선생의 공연을 어머니와 함께 보고 한국무용을 전공하기로 생각을 바꿨다. 지금은 어머니와 함께 섬세한 '제주춤'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매력에 흠뻑 빠져있다.

'제주춤'을 대표하는 무용가 김희숙씨(54·김희숙제주춤아카데미 대표)의 큰 딸 고서영씨(31·예원무용학원장)의 얘기다.

어머니 김씨는 최근 일선에서 한발 물러나 '제주춤' 창작작업을 하면서 지내고 있다. 도립예술단에서 오랜 세월 안무를 하면서 젊은 춤꾼들의 무용을 무대에 올렸지만 정작 자신의 공연을 많이 갖지 못했다. 그런 그가 지금은 자신의 작품을 창작하는데 힘을 쏟고 있는 것. 김씨는 1986년 제주시립예술단을 시작으로 1990년 도립예술단으로 확대된 이후까지 '물허벅춤' '해녀춤'등 다양한 작품을 만들었다. 그리고 2000년 5월 예술단을 떠났다.

김씨가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은 '일이여, 놀이여, 춤이여'. 제주도의 노동, 놀이가 함축된 이 작품은 호평을 받았고 언젠가 손질을 거쳐 재공연하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한다. 무대에서 뼈가 굵은 김씨지만 40세가 넘어서야 대학원에 들어갔다. "늦게라도 대학원에 들어가 공부를 하면서 너무 행복했어요. 그때가 작품세계의 전환점을 가져다준 시기 였던 것 같습니다."

"지금은 제가 딸 아이를 가르친다기 보다 '서로 도움을 주는 무용가 선후배'라고 부르는 게 맞을 겁니다. 오히려 저보다 더 열정적이고 공부 욕심이 많은 딸이 얄미울때도 있어요. 돌이켜보면 나도 치열하게 살았는데 딸의 그런 모습을 바라보는 엄마 입장이 되고보니 안쓰러운 마음이 드는 건 어쩔수 없어요. 딸을 보면 마음이 아프죠."

딸은 엄마의 말에 고개를 떨군다. "엄마를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제주춤의 개척자'죠. 무용가의 길을 걸으면서부터는 '엄마'라는 느낌보다 '무서운 선생님'으로 인식돼 버렸어요. 제겐 더 엄격하고 무서운 선생님이셨죠. 하지만 집으로 돌아가면 다정한 엄마로 돌아갔지만…." 고씨는 춤꾼답게(?) 인생의 반려자도 무대에서 만났다. 대금연주자인 예비 신랑은 공연의 뒷반주를 맡았고 다음달 이들은 '부부의 연'을 맺는다.

고씨는 요즘 학원 운영에, 대학 출강·공부·결혼 준비까지 눈코뜰새 없이 바쁘다. 이렇게 지금은 제주에서 가장 바쁘게 활동하는 사람 중 한사람이지만 무대에만 서면 초긴장 상태. "엄마가 무대에서 빛나는 무용가라면, 전 가르치고 안무를 하는 쪽이 더 맞다는 생각이 들어요."

딸의 이야기를 듣던 어머니가 뜻밖의 얘기를 했다. "경륜이 쌓일수록 무대에 서는 것이 겁이 납니다. 춤을 통해 메시지를 표출해야 한다는 부담감에 함부로 무대에 설 수가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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