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람이 사는 법](31)새 삶 찾은 시각장애인 오순연씨

[이 사람이 사는 법](31)새 삶 찾은 시각장애인 오순연씨
"댄스스포츠로 '희망의 빛’을 봅니다"
  • 입력 : 2009. 08.29(토) 00:00
  • 부정호 기자 jhbu@halla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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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때 안된다는 생각을 버려야 삶의 의욕을 찾을 수 있다"고 강조하는 오순연씨는 댄스스포츠로 희망의 빛을 보고 있다./사진=강경민기자

결막염 앓다 시력 잃고 '절망의 나날'
늦깎이 댄스스포츠 배워 대표선수로
"안된다는 생각 버리면 다 극복할 수 있어"


죽고 싶었다. 암흑 속에 혼자 버려진 것 같았다. 하지만 이젠 살고 싶다. 더욱 더 정열적으로. 절망 속에서 희망의 빛을 보고 마음의 눈을 떴다.

올해로 환갑을 맞은 오순연씨. 그는 12년 전인 1997년 두 눈을 잃었다. 결막염을 앓다가 항생제 부작용으로 실명한 것. 당시 나이가 48세.

2남1녀를 둔 엄마이자 한창인 나이에 찾아온 시련은 그에게는 너무나 가혹했다. 48년 가까이를 정상인으로 살았던 터라 그 고통과 아픔은 더했다. 차라리 '하늘이 무너져 내렸으면'하는 바람 뿐이었다.

자살도 결심했다. 하지만 죽음의 문턱을 넘어서지는 못했다. 가족에 대한 정(情)이 너무 컸기 때문이다. 특히 한쪽 눈이라도 세상을 볼 수 있도록 국내외 전문가들을 수소문해가며 갖은 고생을 하는 남편을 생각할 때는 '죽음'이란 단어를 떠올린 자신이 너무나도 원망스러웠다.

결국 그가 택한 것은 살아만 있자는 것이었다. 현실을 받아들일 수는 없지만 가족을 생각하면 그 길 밖에 없다는 판단을 내린 것. 그는 이후 바깥 출입은 생각조차 안했다. 삶을 포기했으니 당연하다. 교회 가는 날이 그가 유일하게 집을 나설 때였다.

이런 무의미한 삶을 살던 그에게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뜻밖의 희망이 찾아온다. 다니던 교회 목사 부인의 권유로 몇개월전 시각장애인복지관에 점자를 배우러갔던 것이 그의 삶의 의지를 바꿔 놓는 계기가 된다.

지난 4월. 그 무렵 그 곳에서는 시각장애인들을 대상으로 한 댄스스포츠 프로그램이 운영중이었다. 복지관 직원에게 떠밀리듯 수강생이 된 그는 제주특별자치도장애인댄스스포츠연맹 전무이사를 맡고 있는 한효심 휘트니스센터 원장을 첫 대면하게 된다. 그렇게 그는 스포츠 댄스와 인연을 맺게 된다.

오순연씨는 "정말 제2의 인생을 살게된 기분이었어요. 앞은 보이지 않지만 무대에서 파트너와 호흡을 맞출 때는 날개라도 단듯 거칠게 없어요. 댄스스포츠를 통해 새로운 세상을 보게 된 거죠."

한효심 원장은 오씨의 적극성을 지켜보다 지난 6월 제주대표 선수가 될 것을 제안했고, 오씨는 이를 흔쾌히 받아들였다.

기대를 져버리지 않은 오씨는 입문 3개월이라는 짧은 경력에도 불구, 지난 7월과 8월 잇따라 열렸던 제1회 문화체육관광부장관배와 대한장애인체육회장배 장애인댄스스포츠 시각장애인부에서 '삼바' 부문 1위를 차지했다. 그의 열정이 만들어낸 소중한 결실이었다.

목표를 묻는 질문에 오씨는 "조금만 젊었으면 더 큰 꿈도 꾸고 싶은데 그건 욕심인 것 같아요. 거창한 목표는 없고 몸이 허락할 때까지 댄스스포츠를 즐기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특히 그는 "자신이 처한 상황 때문에 안된다는 생각은 버렸으면 좋겠어요. 삶의 의욕을 찾을 수 있는 일들이 많거든요"라며 자신처럼 어려운 처지에 놓인 사람들에게 당부의 말도 전했다.

그는 다음 달 결전을 앞두고 있다. 전남 여수에서 열리는 제29회 전국장애인체육대회에 제주대표로 참가, 메달사냥에 나서는 것. 그러나 그는 메달보다도 '뭍나들이'자체가 더욱 신난다고 했다. 댄스스포츠를 안했으면 어떻게 타지방 나들이를 할 수 있겠느냐며. 소박한 그의 말에서 무한한 행복이 느껴진다. 그의 선전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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