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세계유산을 빛낸 사람들](17)에필로그-(상)

[제주 세계유산을 빛낸 사람들](17)에필로그-(상)
제주가치 빛낸 선구자들 재조명·기념사업 절실
  • 입력 : 2009. 09.30(수) 00:00
  • /강시영기자 sykang@hallailbo.co.kr
  • 글자크기
  • 글자크기
본지가 연재해 온 '제주 세계유산을 빛낸 사람들'은 많은 선각자들의 괄목할만한 업적에도 불구하고 일부만을 다뤘을 뿐이다. 주로 근·현대 자연유산 분야 전문가들의 가치 조명에 집중한 탓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해도 취재의 한계를 절감할 수 밖에 없다. 가깝게는 '오름나그네' 김종철 선생의 족적 마저도 추적하지 못했음을 실토하지 않을 수 없다. 어디 자연유산 뿐인가. 일제 강점기를 관통하며 평생토록 저술과 후학 양성에 힘쓰며 제주의 역사와 정체성을 정립하는데 헌신한 심재(心齋) 김석익(金錫翼) 선생도 이 공간에서는 비껴 있다. 제주도와 한라산을 알린 선현들은 물론 문화예술, 민요민속, 산악분야 등에 이르기까지 제주를 빛낸 선각자들은 일일이 나열할 수 없을 정도다. 그래서 이 연재는 미완이다.

제주는 2007년 세계자연유산의 반열에 올랐다. 지구촌의 가장 걸출한 자원 중 하나로 제주의 가치가 재평가된 것이다. 제주 생태계 등 자원의 가치를 학문적으로 본격 재평가되기 시작한 것은 100여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중심에는 많은 선각자들의 노력과 열정이 있었다. 이들은 제주자연과 문화에 뚜렷한 족적을 남긴 제주도학의 선구자들이다. 본지가 연재해 온 '제주 세계유산을 빛낸 사람들'은 지난 1세기 동안 제주의 자연과 문화분야에 뚜렷한 족적을 남긴 인물들을 추적해 왔다. 부종휴, 석주명, 겐테, 타케가 그들이다. 이들의 족적은 우리의 소중한 자산이자 제주를 더욱 빛낼 자원이다. 그러나 이들의 자취와 업적은 점점 잊혀져가고 있다.

▲제주토종 과학자인 부종휴가 일행과 함께 만장굴을 탐사하다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다. 사진 왼쪽 안경 낀 이가 부종휴. /한라일보DB

■ 부종휴 ( 1926~1980 )

평생 한라산·동굴 탐사에 헌신한 제주인
세계자연유산 등재 초석… 흉상조차 없어
만장굴 최초 답사 '꼬마탐험대'도 잊혀져


그는 광복 이후 식물과 동굴, 산악, 고고학 등 다양한 영역을 넘나들고 제주의 곳곳을 누비며 자원을 발굴하는 데 뚜렷한 족적을 남긴 자랑스런 제주인이다. 근·현대 제주를 대표하는 토종 과학자 중 한 명이다. 그의 발길이 스쳤던 한라산과 만장굴 등 용암동굴은 반세기를 넘겨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의 반열에 올랐다. 제주 세계자연유산 곳곳에는 그의 숨결과 족적이 남아 있다.

그는 평생 한라산과 동굴속을 헤집고 다닌 식물학자이자 동굴학자로 기억된다. 해방 이후 식물과 동굴, 산악, 고고학 등 다양한 영역을 넘나들면서 제주의 곳곳에 산재해 있는 자원을 발굴하는 데 뚜렷한 족적을 남긴 자랑스런 제주인이다.

부종휴는 광복 이듬해 김녕초등학교 '꼬마탐험대'를 이끌고 암흑세계의 만장굴을 최초 답사해 세상 밝으로 알린 주역이 바로 부종휴이다. 그를 따라 미답의 동굴탐험에 성공했던 감동적인 스토리의 주역들인 코흘리개 어린 학생들은 지금은 일부만이 생존해 있을 뿐이다. 빌레못굴과 수산굴, 서귀포 미악 수직굴 등 제주의 수많은 용암동굴들과 그속에 묻혀있던 고고·역사적 유물들이 세상에 알려진 것도 그를 통해서였다. 부종휴의 탐험정신이 일궈낸 개가였다.

그는 '한라산 박사'로도 뛰어난 업적을 남겼다. 정상만 3백50여회 등정하며 미기록 식물 등 한라산 자원의 개척자였다. 우리나라 최초의 적십자산악안전대 창립을 주도하고, 한라산 곳곳을 누비며 10개의 등반코스를 새롭게 정립하는 등 제주 산악운동의 불을 지폈다. 이런 풍부한 현장경험과 조사는 한라산을 국립공원으로 지정하는데 결정적 토대가 됐다.

하지만 그의 업적은 방치되고 있다. 그의 업적은 거의 기록으로 남겨지지 않았다. 때문에 그를 기억하는 사람도 많지 않다. 족적은 지워지고 묻혀버리고 있다. 기념관은 커녕 그의 삶과 업적을 기리는 흉상이나 기념 전시관, 공적비 조차 찾아볼 수 없다. 스승 부종휴와 함께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탐험정신과 용기를 보여준 꼬마탐험 대원들의 이야기도 잊혀져가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이 점을 안타까워한다.

본지는 지난 2004년 '한라산 박사, 부종휴'에 대한 특집기획을 연재해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이어 그의 업적을 재조명하기 위한 심포지엄을 열어 재조명 논의에 단초를 마련했다. 제주 세계자연유산본부는 최근 부종휴의 업적을 다시 조명하고 다양한 기념사업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유족과 당시 동굴탐험대원들의 스토리 기록물을 발굴해 나가는 일련의 과정이다. 하지만 이 구상은 아직 걸음마 단계에 있을 뿐이다.

■ 석주명 ( 1908~1950 )

해방직전 제주에 머물며 '제주학' 기틀
명예의 전당 헌정… 기념사업 지지부진
道·제주大 협력 가시적 후속 대책 시급


서귀포시 토평동 소재 제주대학교 아열대농업생명과학연구소는 세계적인 '나비박사'이자 제주학 연구의 선구자로 추앙받고 있는 고(故) 석주명(石宙明·1908-1950) 선생이 제주에 거주하는 동안 연구의 거점 공간이었다. 석주명 탄생 100돌을 맞아 제주에서 기념사업회가 발족하고 추모사업과 학술대회 등을 개최해 오고 있는 데는 석주명이 제주에 남긴 족적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념사업은 지지부진하다.

▲석주명은 해방직전 제주에 머물면서 '제주학'의 기틀을 다졌다. 사진은 지난 2월 제주도민속자연사박물관에서 열린 석주명 전시회. /한라일보DB

문화재위원들과 학계에서 "석주명의 연구공간이었던 아열대농업연구소의 건축물이 역사적·문화적 가치를 갖고 있으며 보존·활용과 함께 등록문화재로 지정할 필요성이 높다"고 주장하고 있다. 제주도문화재위원들과 학계에서는 이 연구소를 등록문화재로 지정함으로써 석주명 기념사업의 단초를 마련하려 했다.

하지만 석주명을 기리는 기념사업도 딜레마에 빠졌다. 제주대학교는 해방 직전 2년여간 석주명 선생의 제주학 연구활동 거점이었던 아열대농업생명과학연구소를 등록문화재로 지정하는데 협조해 달라는 제주특별자치도의 요청에 수용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다.

제주대의 이같은 입장은 석주명 선생 탄신 100주기와 명예의 전당 헌액을 계기로 아열대농업생명과학연구소를 등록문화재로 지정해 기념사업을 구체화시켜야 한다는 여론에 배치되는 것이다. 학계에서는 건축·문화재적 가치가 높은 것으로 이미 평가받은 건물에 대해 문화재 지정을 수용하지 않은 것은 지성의 상징인 대학답지 못하다고 비판하고 있다.

다만 지금까지 석주명 기념사업에 대해 무관심으로 일관해 온 제주대가 석주명기념사업의 필요성과 구상을 밝힌 것은 주목할 만한 대목이다. 대학이 일시적으로 여론을 무마하려는 것이 아니라면 현재 제주대가 처한 학내문제가 해소되는 대로 구체적이고 가시적인 후속대책을 제주도와 기념사업회 등 관련기관·단체와 함께 모색하려는 진정성을 보일 때라는 지적이다.

이 현안은 제주대에만 책임을 전가할 일도 아니다. 제주도 당국이 대학측의 결정만 기다릴게 아니라 후속대책을 마련하는데 주도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높다. 30년 가까이 제주사회에 줄기차게 제기돼 온 석주명 기념관 등 기념사업이 담론으로 그칠지, 아니면 열매를 맺을 수 있을지 이제 새로운 출발지점에 서 있다. 2010년은 석주명이 고인이 된지 60주기가 되는 해이다.
  • 글자크기
  • 글자크기
  • 홈
  • 메일
  • 스크랩
  • 프린트
  • 리스트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밴드
기사에 대한 독자 의견 (0 개)
이         름 이   메   일
9306 왼쪽숫자 입력(스팸체크) 비밀번호 삭제시 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