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람이 사는 법](38)제주 찾은 유목민

[이 사람이 사는 법](38)제주 찾은 유목민
'아름다운 제주’에 빠진 카우보이
  • 입력 : 2009. 10.24(토) 00:00
  • 표성준 기자 sjpyo@halla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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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접한 사진 한장에 매료돼 제주에 정착한 미국 텍사스주 출신의 제이 리건. 제주대 외국어교육원 강사로 근무중인 그는 제주의 아름다운 풍광을 만끽하기 위해 곳곳을 누비고 있다. /사진=강경민기자 gmkang@hallailbo.co.kr

미국서 우연히 접한 사진 한장에 매료
2년전 정착 … 제주문화 배우기 한창


제주의 자연을 사랑한 나머지 제주에 정착한 카우보이가 있다. 미국 남서부 텍사스주 출신의 제이 리건(Jay Ligon). 지난 2007년 2월 고향을 떠나 제주에 들어온 그는 중학교 영어강사를 거쳐 현재 제주대학교 외국어교육원 영어강사로 재직 중이다. 그가 제주를 찾은 건 어쩌면 숙명이다. 텍사스는 농목축업이 주요 산업이고 목축이 특히 발달한 지역이다. 그래서인지 그에게는 '유목민'의 피가 흐른다. "휴학과 여행을 반복하면서 대학을 10년간 다녔어요. 종교와 영문학, 드라마, 저널리즘, 문학창작을 수료했어요." 자신을 유목민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도 한치의 망설임 없이 그렇다는 답이 나온다.

그렇게 공부를 하면서 인생을 즐기던 그에게 제주가 다가왔다. "집 근처에 한국인이 운영하는 가게가 있었는데 거기에 사진이 한장 걸려 있었어요. 사진 속 아름다운 풍광을 보고 매료됐었죠." 한국이민자였던 가게 주인부부가 제주에서 찍은 신혼여행사진이었다. 마침 랭귀지스쿨(ESL Language Centers, Houston)에서 외국인 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던 중이었고, 수강생 중에는 한국인 학생도 있었다. 한국인 학생을 통해 접한 한국음식은 잠자던 유목민 기질을 다시 깨웠다. "꽃게탕, 김밥, 떡볶이 등등 너무 매웠지만 그 이상으로 흥미로운 경험이었어요." 그때부터 한국의 문화와 언어를 익히기 시작했다. 한국인 가게를 찾아 인사를 거는 일이 잦아진 것도 그 즈음이다.

운명처럼 제주행을 결정했다. 요즘은 제주대 외국어교육원에서 오전과 저녁에는 대학생, 오후에는 초등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친다. 초등학생들은 그에게 소중한 한국어 선생님이기도 하다. 아이들에게 그의 이름은 '쏼라쏼라'로 통한다. "젊은 세대들은 아주 활달하고, 그래서 영어실력도 편차가 있긴 하지만 아주 훌륭한 수준입니다." 하지만 그가 만난 많은 어른들은 부끄러움이 많았다. "음식점이나 옷가게 등을 다닐 때는 힘들어요. 언어가 통하지 않아도 일단 시도는 해봐야 하는 거 아닌가요." 그래서 국제자유도시가 피부에 와닿지는 않는단다.

그는 제주여성을 만나 결혼했다. 다행히 배우자의 가족들은 봐왔던 어른들과 달랐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너무 잘해주셨어요. 장인과 장모는 물론이고 아내의 할머니까지도 저만 보면 저의 닉네임 '쏼라쏼라'를 외치면서 손을 부여잡고 호탕한 웃음소리로 반겨준답니다." 지난 추석은 배우자의 가족들과 함께 보냈다. "너무 흥미로운 경험이었어요. 장인어른에게 성묘에서부터 차례를 지내는 절차까지 배웠답니다."

제주의 풍광에 빠진 그는 제주의 곳곳을 누비고 있다. 지난 여름에는 제주시 사라봉에서부터 서귀포시 중문관광단지까지 해안도로를 따라 혼자서 4일간 도보여행도 했다. 유목민은 떠돌지만 돌아갈 곳이 있다. 그 역시 2~3년쯤 뒤 아내와 함께 미국으로 돌아가 박사학위에 도전할 계획이다. 다행히 러시아와 일본에 교환학생으로 다녀온 그의 아내도 유목민 기질이 있다. 그러나 이같은 시도는 다시 제주를 찾기 위한 도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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